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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8월 19일부터 이 작업을 시작했다. 오늘로서 꼭 1년 전이다.
먼저 필름에서 스캔한 파일을 스크린하면서 RGB 포맷을 sRGB로 변환했다. 최대 400MB가 넘는 파일들을
모니터에 띄우고 변환하고 저장하는 작업만 해도 컴퓨터가 지쳐버렸다. 이 변환작업에만 꼬박 20일이
소요되었고 9월 1일부터는 가로 4000픽셀의 리사이즈 작업과 1차 색상조절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1주일 후인 9월 8일엔 가로 2000픽셀로의 2차 리사이즈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거의 매일 새벽 3시 30분에 일어났고 밤 12시가 되어야 잠자리에 들었다.
넉 달 후인 12월 19일에 필름사진의 1차 작업이 다 되었고 20일부터는 디지털로 촬영한 사진작업에
들어갔다.
가장 힘든 작업은 어떤 사진을 선택하고 어떤 사진을 버리느냐는 것이었다.
촬영할 때의 느낌이나 에피소드를 기억에서 완전히 배제하고 사진 자체만으로 선택해야 하지만 그게 그리
쉽지 않은 일이어서 버렸다가 다시 취하기를 몇 번 씩이나 반복한 사진도 있을 정도다.
여하튼, 우여곡절 끝에 금년 4월 22일엔 2차 선택작업과 슬라이드 순서를 결정했고 최종 색상 수정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이때부터 신경이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컨디션에 따라 색감이 달리지기 때문에 술이라도 한 잔 마신 날은 작업을 그만 두어야 했다.
무리하게 작업한 걸 다음 날 보면 사진에서 술 냄새가 났다. 색감은 무당 굿이 되었고 계조는 깨져서
열두 계단을 만들었다.
그러나 색감에 대한 느낌이 좋을 땐 48시간도 넘게 잠 한 숨 안 자고 계속할 때도 있었다.
이건 기계로도 대신할 수가 없으니 어쩔 수가 없다. 내 눈과 내 느낌으로만 가능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5월 3일부터는 배경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슬라이드쇼의 배경음악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게 5년도 넘었다. 그리고 이 CD를 만드는 게 늦어진 것도
바로 배경음악 때문이었다. 내가 저작권료를 안 내려는 게 아니라 달라는대로 다 주고 쓰겠다는데도
그 절차가 너무나 복잡하고 또 내가 원하는 곡을 '협회'에 등록된 곡 중에서 찾아내기가 쉽지 않아
제물에 지쳐버려 포기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예를들어 에바 캐시디의 '대니 보이'를 쓰고 싶어서 미국에서 수입한 CD를 사서 협회에 알아보니 그
CD를 만든 제작사에서 만든 캐시디의 CD는 등록이 안 되었다고 한다. 꼭 쓰고 싶다면 그 CD를 만든
미국의 제작사와 협의해야한다고 한다.
그래서 등록된 걸 알아보니 일본의 어느 회사에서 만든 게 등록되었는데 문제는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
봐도 그 CD를 파는 데가 없는 것이다.
이 슬라이드쇼는 러닝타임이 약 95분이다. 그렇다면 최소한 30곡 정도의 음악이 필요한데 곡 하나하나를
이렇게 하다가는 배경음악이 있는 CD는 못 만드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다. 신제주의 어느 주점엔 직접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하고 자신의 노래 앨범을 낸 분이
있어 찾아갔었는데 다른 연주자를 통해 15분 가량의 배경음악을 만들려면 수백 만원이 필요하다고
한다. 비용은 둘째치고 그렇게 만든 음악이 내 마음에 들지 안 들지 알 수가 없고 마음에 안 든다고 몇
번씩이나 다시 만들어 달라고 할 수 있겠는가 싶어 포기해버렸다.
심지어는 인터넷을 뒤져 '키보드 동호인'이라는 데 가입해서 내가 필요한 배경음악을 만들어 줄 사람을
찾아보기도 했고 하다하다 안 되어 차라리 내가 키보드를 사고 연주법을 배워서 배경음악을 만들어볼까
하는 끔찍한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지난 해 4월 그러니까 이 CD 작업을 하기 4개월 전,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느 음악학원의
피아노 선생에게 수고비를 드리고 임대한 신디사이저로 클래식 소품 등 몇 곡을 연주해 달라고 했는데
마음에 안 들어 결국 아리랑 한 곡만 만들게 되었다. 단 50초짜리 한 곡이었다. 이 곡을 만드는 데도
저작권에 특히 유의해야했다. 작곡자가 없는 민요 아리랑이라 해도 편곡한 곡은 저작권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만든 곡을 가지고 몇 가지 음악편집기를 이용해 전주도 만들고 간주도 만들고 .....
그 과정을 다 말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음악을 아는 분들이 들으면 한숨을 쉬시겠지만 내 고생을
북한식으로 표현하자면 '고난의 행군'이고 우리 식으로는 '맨땅에 헤딩하기'에 다름 아니다.
5월 30일엔 슬라이드쇼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멘트 작업이 완료되었다. 한글 멘트는 내가 썼지만 영역은
큰며느리에게 맡겼다. 멘트의 글씨체, 글자의 크기, 장평, 색깔 등을 바꾸기를 여덟 차례.
6월 3일엔 1차 편집이 완료되었고 슬라이드쇼를 처음부터 다시 보고 또 보면서 어색한 부분은 수정하고
계조가 안 좋은 사진은 원본에서 재작업 하기도 했다.
6월 14일, 서울에 올라가 CD 제작업체를 찾아 CD와 디지팩을 만드는 일을 협의했다.
7월 27일엔 디지팩 디자인 시안이 도착했고 그 후 아홉 차례의 수정을 거쳐 디자인이 확정되고 제작에
들어갔다. 그리고 8월 13일 마침내 만 1년이 걸려 만든 CD가 내게 도착했다.
직경 12cm, 이 작은 디스크 하나에 내 삶의 황금기라 할 25년이 들어있다니....
힘들여 고생하며 사진을 찍고 서툰 솜씨로 편집해 만든 결과물을 앞에 두고 기쁜 마음은 간 데 없고
허전함이 밀려들었다.
CD 하나를 꺼내 노트북에 넣고 프로젝트에 연결했다. 소주 한 병을 따서는 잔에 따르지도 않고 한 모금씩
마시면서 흐르는 사진을 지켜본다. 몇 컷 지나지도 않았는데 사진을 안 보이고 스크린엔 지난 일들만
가득하다. 추위와 외로움에 떨고 있는 내 초라한 모습도 보인다....
감상하기에 좀 엉성해도 널리 이해해주시기 바란다. 내 딴엔 최선을 다 한 결과물이고 내 솜씨가 아직
이 정도밖에 안 되니 어쩌겠는가. 몇 년 후 좀 더 좋은 솜씨로 좀 더 근사한 걸 만들 수 있을 지도 모르니
염치 없지만 기대해 주시길 부탁드린다.
올봄 3년 간의 피말리는 작업 끝에 겨우 사진집 한 권 만들어 세상에 내놓고, 보름간의 전시회를 가졌었습니다.
전시회를 마친 후 밀려오는 허탈함을 견디기 힘들다는 핑계로 무작정 제주로 향했고, 그곳에서 처음 향선생님을 뵈었지요.
장대비가 퍼붓던날 밤에 소줏잔을 기울이며 들었던 향 선생님의 지난 세월 앞에서 저는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느꼈고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제 그렇게 오랜세월 인생의 황금기를 바쳐 이루어내신 결과물을 받아들고 가지셨을 그 느낌을 저도 천분지 일이나마 알것 같은 생각을 감히 해봅니다.
제가 나중에 지금의 향선생님과 같은 나이가 되었을때 과연 얼마나 스스로를 떳떳하게 되돌아볼수 있을지 무척이나 걱정이 됩니다.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축하드리면서, 지금까지 제주에서 지내오신 세월만큼, 아니 그 두배만큼 오래오래 건강하시고 좋은 사진 보여주시기를 기원합니다.
복사골 사진쟁이 올림
고생하시고 작품 만드시느라
온 정성을 기울이신듯 합니다
암튼 허전 하셨다니
뭐라고 말씀 드려야 할런지요?
당분간 쬐끔 심호흡을 하시고
앞으로 나아가시길 바랄께요
항상 건강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