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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산행유정 山行有情

조회 수 12405 추천 수 0 2010.03.15 14: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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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6월 5일, 200회째 산행하던 날 정상에서 촬영한 일출-.
200회째 산행한다고 산과 하늘이 다를 게 없겠지만 마음 속으론 이렇게 깨끗한 일출을 보고 싶었다.
이날 처음으로 디지털 카메라인 Canon EOS 10D를 갖고 정상에 올라 여명부터 일출을 촬영하기도 했다.

1986년 3월, 제주도 사진 찍겠다고 제주에 온 지 벌써 18년째, 그리고 미친듯이 산에 오른 게 이날로서 200회째다.
앞으로 한라산에 얼마나 더 오를 수 있을까.
앞으로 내 몸이 얼마나 더 견뎌줄 수 있을까.

 

 

산행유정 山行有情

한라산  산행 200회를 회고하며-

1. 동경(憧憬)

1986년 3월 24일 아침, 눈 덮인 한라산을 마주하며 제주항에 입항하는 카페리 선상에서의 감개무량함을 잊지 못한다. 1980년 12월 서울에서 근무할 때의 출장길에 처음 가봤던 제주, 1984년 마음먹고 한 번 구경하려고 막내 동생과 함께 가봤던 제주가 아니라 처자식 거느리고 아예 살려고 가는 길이었으니 그 느낌이 같을 수가 없다.

제주도가 어떤 곳인가. 산 설고 물 설은 객지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그야말로 '물 건너의 고을(濟州)'이 아닌가. 단 두 번 가 본 제주에 반해서 일가친척은커녕 동기동창이나 친구 하나 없는 먼 곳에, 그것도 혼자서가 아니라 아내와 어린 두 자식 모두 데리고 갈 때 성깔 별난 나라고 해서 어찌 망서림이 없었을까. 영호남은 그만두고 아래 윗동네 사이에서도 풍습을 달리하는데 하물며 바다 건너 고을에 이주해 살면서 어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벌어지는 건 아닐까, 직장에서의 근무 분위기는 어떨까, 아이들은 낯선 곳에서 친구들 사귀며 잘 적응해 나갈까 등등, 처음 가졌던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에 대한 동경보다는 이것저것 걱정되고 망서려지는 게 더 많았다. 제주로 가겠다고 결심하고 전근을 신청한 6개월 동안 내내 그런 생각들이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 제주는 내게 있어 미지의 세계였다. 며칠 구경하고 돌아가는 일정이 아니라 거기서 살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는 최소한 그랬다. 그 미지의 세계로 가서 살겠다는 것은 내 인생의 한 모험이었다. 난 스스로 그 모험을 하기로 했고 그 결과 또한 감수하기로 했다. 단 두 번 가 본 제주는 내게 그만큼 매력적인 곳이었고 또한 동경의 대상이었다.

제주행을 결심한 후 제주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 대로 구해 읽었다. 제주의 풍습과 역사, 특히 4.3사건에 대한 자료를 정독했다. 역사에 묻힌 제주인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건 그들과 삶을 같이 하는 데에 중요하다는 생각에서였다.

 

 

2. 새로운 생활

"독새기 삽서! 달걀 삽서!" 하는 계란 장수의 소리를 들으며 제주시 삼양 1동 회사 사택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새로 건설한 발전설비를 시운전하는 일로 바쁜 나날이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나면 한라산과 해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익숙해지고 눈이 무디어지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사진을 촬영하려고 했다. 외지인의 눈으로 보는 제주의 풍광을 찍으려고 한 것이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어졌지만 대규모 바나나 하우스만 해도 내겐 놀라움의 대상이었다. 길 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칸나, 월령 해변에 자생하는 선인장, 하도리의 문주란 군락지 등 제주엔 나를 놀라게 하는 게 많았다. 심지어는 해변의 현무암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이름 모를 풀조차 왜 그렇게 예쁜지 모르겠다. 나는 애초에 작정한 대로 앞으로 제주에 3년간 살면서 제주의 모든 걸 필름에 담으려고 했다. 크지 않은 섬이니까 3년이면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다.

제주에서의 생활은 처음 생각보다 좋았다. 우선 제주 오기 전에 살던 울산보다 생필품 값이 더 쌌다. 내가 계속 써야하는 필름값을 예로 들자면 울산의 회사 구판장보다 제주 구판장의 값이 쌌다. 시내에서도, 흑백 인화지 전지 열 장 값이 울산에서는 2만 2천 원 했는데 제주에선 1만 8천 원 밖에 안 했다. 참 놀랐웠다. 섬이라서 엄청 비쌀 줄 알았는데.

제주는 당연히 물과 공기가 좋을 줄은 알았는데 이렇게 좋은 줄은 몰랐다. 몇 년만에 사택 옥상의 물탱크 내부 청소를 했는데 까만 모래만 약간 있을 뿐이었다. 울산에선 매년 청소해도 뻘이 한 뼘이나 쌓이고 실지렁이가 득실대었다. 나는 지금도 물을 끓여 먹지 않는다. 그만큼 제주의 수돗물을 신뢰한다. 공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제주도 공기 캔에 넣어서 판매하고 있으니까. 울산 석유화학공단의 악취를 생각하면 진작 제주에 올 걸 하는 생각이 간절하다.

죽을병까지 걸렸던 큰 놈 훈이, 몸이 너무 약해서 초등학교 4학년이면서도 줄넘기를 한 번도 못했던 작은 놈 준이, 그리고 이군과 나도 차츰 건강해지기 시작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했던 마음도 차츰 사라지고 우리 네 식구는 제주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역시 그랬다. 온양 대구 삼척 영월 강릉 서울 울산 등으로 다니며 살아보니 어딜 가나 사람 사는 건 그게 그거라는 생각이었는데 제주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관혼상제의 풍습이 약간 다를 뿐 삶에 대한 희로애락까지 다를 순 없는 것이었다.

 

 

3. 겨울 한라산과의 첫 만남

그 해 11월 30일, 겨울 첫 산행에서 만난 한라산은 내게 큰 충격이었다. 제주에 와서 몇 번 산행을 하긴 했어도 겨울철의 한라산은 전혀 딴 모습이었다. 눈안개 속에 어리목 코스를 타고 윗세오름 대피소까지 갔는데 전혀 개일 기미가 없었다. 대피소에서 좀 기다리다 혼자 남벽코스를 타고 정상을 향해 걷고 있는데 백록샘 부근에서 갑자기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짙은 운무 속에 화구벽이 모습을 보이고 눈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던 상고대 맺힌 고사목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아름다운 정경에 나는 넋이 나갔다. 불과 10분도 안 되어 다시 짙은 눈안개로 시야가 가려졌지만 그 잠깐 동안의 한라산 모습은 처음 계획인 3년을 훨씬 지나 17년 째 나를 제주에 묶어두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제주도를 모두 촬영하겠다는 처음의 계획을 버리고 한라산을 집중적으로 촬영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그날 이후 나는 한라산에 차츰 더 깊이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 해 겨울이 깊어지고 많은 눈이 내린 후 선작지왓에서, 그리고 사제비 동산에서 만세동산을 지나 윗세오름에 이르는 눈 부신 설원에서 겨울 한라산의 진가를 확인했고, 어느 날 새벽 한라 정상에서 맞이한 황홀한 여명과 일출은 마약처럼 나를 한라산에 빠져들게 했다.

이미 타계하신 김근원 선생님도 한라산에서 몇 번 뵈었는데 그 분이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지리산에 가보면 역시 산은 지리산이 제일 좋다는 생각이 들고 설악산에 가보면 역시 설악산이 제일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말씀이. 나도 강원도에 살면서 설악산 오대산을 비롯 여러 산을 다녀봤지만 '좋지 않은 산'이란 없다. 그런데 그 중에도 한라산은 독특하다. 산마다 나름대로의 개성이 있지만 특히 겨울 한라산은 보고 또 봐도, 17년간을 오르면서 봐도 가슴이 설레도록 감동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겨울철만 좋다는 게 아니라 육지의 다른 산에 비해 겨울철 풍광이 독특하다는 말이다.

 

 

4. 외로움, 그리고 뜻 모를 그리움

나는 지금도 산행하기 전날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한다. 긴장과 설렘이 잠을 못 자게 한다.

야간 산행의 무서움과 사고에 대한 긴장, 그리고 한라산을 만난다는 설렘과 사진촬영에 대한 생각이 나를 잠 못 자게 한다. 출발 시간을 기다리며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를 한 번 더 점검하고, 전에 촬영한 사진을 찾아보면서 촬영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세우기도 한다.

혼자 하는 야간산행은 늘 무섭다. 맹수가 없는 한라산이라 해도 어두움이 주는 무서움은 어쩔 수 없다. 캄캄한 밤, 눈보라가 치거나 비바람이 치면서 나무가 소리를 내며 흔들리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럴 때는 정상에서 맞이하는 화려한 여명과 일출을 생각하며 무서움을 떨쳐버리려고 애쓴다.

'조금만 더 참자. 조금만 더 가면 정상에 도착할 것이고 오늘 정상에선 멋진 여명과 일출을 보게 될 것이다.'

근데 둘이 가면 안 무서울 텐데, 그리고 위험도 덜 할 텐데 왜 혼자 가느냐고? 함께 갈 사람이 없어서 혼자 간다. 전엔 몇 번 한 두 사람 같이 간 적도 있었는데 이젠 없다. 너무 힘들어서 나하고 함께 못 다니겠단다. 아니, 함께 다니자는 사람도 있긴 있는데 나하고 사진하는 방식이 달라서 내가 같이 못 다닌다. 나는 어차피 혼자 다녀야하나 보다. 사진을 위한 '몸과 마음의 완전한 자유'는 혼자 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혼자 다니는 것도 오래 하면 숙달이 되나 보다. 전엔 산행하기 전에 여기 저기 전화를 해서 내일 산행하지 않겠냐고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는 아예 그러지도 않는다. 이젠 혼자가 차라리 마음 편하다. 약속시간 맞추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늦는 사람 기다릴 필요도 없으니까. 그리고, 사실은 나는 혼자 산행을 해야 사진에 몰입할 수가 있다. 한 사람 더 가면 그만큼 마음 쓸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더구나 적설기엔 나 혼자의 발자국도 많은데 한 사람 더 가면 발자국이 두 배가 된다.

혼자 산행하면서 꼭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건 어떨 때 난데없이 외로움이 엄습하거나 뜻 모를 그리움이 밀려드는 경우다. 그럴 땐 참 힘들어진다. 나도 어쩔 수가 없다. 그런 감정에 한 번 휩싸이기 시작하면 사진을 찍을 마음이 다 달아난다. 마음이 허전해져서 견딜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산행을 그만두고 하산할 때도 있었는데 나이가 40대를 지나 50대에 들어도 그런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 참 이상하다.

 

 

5. 산행 200회의 회고

2003년 6월 5일 바로 오늘, 한라산에 200회 째 올랐다.

삼척에서 살 때, 하루는 통근버스를 기다리다가 동양시멘트에 다니는 동기동창 녀석을 만났다. 읍 지역의 작은 동네에서도 녀석을 만난 게 참 오랜만이었다. 가까운 친구라 해도 평생 200번 만나기는 쉽지 않은 것 같다.

산행-200에는 나의 30대 마지막부터 50대 중반을 넘어가는 지금까지의 삶 모두가 담겨있다. 내 인생의 황금기의 열정을 모두 쏟아 부은 거다. 그러나 200이라는 숫자는 사실 별 건 아니다. 운동 삼아 거의 매일 산에 오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 분들은 아마 1년에 200번도 더 오를 것이다. 다만 가벼운 비무장으로 등산로 따라 오르내리는 사람과 20kg 정도 되는 배낭을 짊어지고 사진이 될만한 장소 찾고 날씨 맞춰서, 때로는 하루에 15시간 이상 산행하는 차이 정도는 있겠지 싶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17년간 200회를 올랐으면 한 달에 겨우 한 번 꼴도 채 안 되는 거다.

한라산을 200여회 오르면서 내 체력으로는 좀 무리한 산행을 한 적도 많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가을 운동회조차 제대로 다 참가하지 못할 정도로 허약했고, 불과 10여 년 전 만해도 체중 53Kg의 약골이었다. 그런 내가 다만 한라산 사진에 대한 열정만으로,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촬영해온 한라산 사진 중 나만의 사진을 얻고 싶다는 욕심만으로 산행을 했으니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산행을 하다보니 당연히 이야깃거리도 많을 수밖에 없다. 야간에 혼자 1800고지 부근에서 길을 잃어 헤맬 때도 있었고, 주간인데도 심한 눈보라로 남벽코스에서 하산하다 길을 잃은 적도 있었다. 어느 여름날 장구목에서 이틀간 물과 빵으로만 버티며 사진을 찍었는데 하산하기 위해 윗세오름대피소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탈진상태가 되어 다른 사람이 내 배낭을 메고 하산하기도 했었다. 또 어느 겨울날엔 하산길에 만세동산에서 탈진해서 눈 위에 쓰러졌다가 겨우 일어나 배낭을 우의로 씌우고 보조자일로 묶어서 눈 위로 끌고 내려온 적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길을 잃고 헤매다 거의 죽음에 이른 사람을 구해 준 적도 있었다. 대구 사람 둘이었다. 아마 산 사진하는 사람 치고 이런 정도의 이야깃거리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지난 17년을 회고해 볼 때 한라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분들의 물심양면 따뜻한 도움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더구나 지방색 강한 제주에서 외지인인 내게 그분들이 베풀어준 인간적인 후의는 나의 한라산 촬영에 결정적인 힘이 되었다. 그분들을 위해 여기에 구체적인 이야길 쓰지 못하는 게 참으로 유감스럽다.

산행할 때의 어려움과 산행을 하면서 얻은 것을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홈의 촬영메모에도 써 놨지만 나는 적설기 산행을 할 때마다 '내가 꼭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어 맨 처음 할 일은 눈 좀 왔다고 경찰이 도로통제하는 일을 못하게 하려고 한다. 그렇잖아도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불철주야 고생하는 경찰'에게 이런 일까지 시켜서야 국민된 도리가 아니다. 경찰은, 길이 얼었으니 주의하라거나 눈이 많이 쌓였으니 체인을 치라거나 현재 도로가 위험하니 가능하면 가지 않는 게 좋습니다 하는 정도로 주의만 환기시키면 된다는 생각이다.

참 이해하지 못할 건 육지에선 눈이 오면 대형차량부터 통제를 하는데 제주에선 소형차량부터 통제를 시작한다는 것이다. 적설기에 급경사와 급커브에선 당연히 대형차량이 더 위험하다, 그리고 TV에서도 미시령에 눈이 오면 대형부터 통제하지 않더냐 해도 '상부의 지시'는 변할 수가 없나보다. 어느 경찰은, 육지와 제주도의 눈이 다르기 땜에 그런 거 아닐까요 하는 말도 했다. 겨울산행의 어려움은 이렇게 1100도로 위에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1994년 4월에 처음으로 차를 샀다. 출고된 지 3년 된 중고 프라이드-내가 늘 벤츠라고 말하는 바로 그 차다-인데 이 차를 사기 전에 나는 한라산에 90회를 올랐다. 차가 없으니 등산로까지 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미터기 표시요금의 두 배나 받는 택시비도 문제지만 겨울철에 눈이 조금만 쌓여도 버스도 안 가고 택시도 안 가려고 한다. 버스는 어차피 적자노선인데 안 갈수록 좋고, 택시는 체인을 치고 벗기기 귀찮으니 안 가려고 한다. 한 번은 제주농고에서부터 혼자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는데 어리목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지쳐버려 그날 정상까지 산행을 하는데 정말 많은 고생을 했다. 산행도 힘들지만 등산로 입구까지 어떻게 가느냐 하는 것이 항상 큰 문제였다.

그러다 차를 사고 나니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차를 사자마자 어리목과 영실로 다녀보고 멀리 섭지코지에도 가보고 그랬다. 차가 없어 고생했던 데를 다 가봤다. 그때 산 차를 나는 지금도 몰고 다닌다. 이제 출고된 지 12년이나 되었다. 차체 몇 군데가 삭아서 비닐 뭉치로 막아놓은 것 외에 운행에는 조금도 문제가 없다. 앞으로 8년만 더 타고 새 차를 사려고 하는데 아마도 그 전에 새 차를 타게 될 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내게 사진을 배우는 녀석이 복권 당첨되면 내게 차를 사주겠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있으니 그럴 가능성이 많다고 믿는다. 차가 없이 사진을 한다는 게 지금은 상상을 못하지만 나는 8년간 90번 산행을 하면서도 차가 없었으니 없으면 없는대로 하게 마련인가 보다.

산행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은 그 외에도 좀 더 있다. 장비무게와 체력과의 싸움은 처절하다. 배낭 무게를 줄이기 위해 별 짓을 다한다. 김밥 무게를 줄이기 위해 빵을 넣기도 하고 수통 물을 가득 채울 것인지 1/3 정도만 채울 것인지에도 고심을 한다. 사제비 샘물을 믿었다가 눈 속에 파묻힌 샘물을 찾지 못해 많은 고생을 한 경우도 있었으니까. 촬영장비 선정도 그렇다. 몽땅 다 짊어지고 갈 때도 있지만 주목표에 따라 장비를 가감하게 된다. 그것도 큰 고심이고 어려움이다. 안 가져가면 좋겠는데 혹여 산에 가서 후회할 일이 생길까봐 그렇다.

산행을 하면서 얻은 건 캐비넷을 가득 채운 필름과 건강이다. 키 171cm에 체중이 항상 53kg 정도였던 내가 지금은 68kg이 되었다. 제주에 처음 왔을 때라면 지금의 배낭을 짊어지고 산행을 한다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을 거라고 생각된다. 그때는 35미리 두 대에 표준렌즈, 28미리와 135미리 렌즈가 모두였으니까. 아 참, 중형인 Mamiya Universal도 있었다. 그러나 무게로 치자면 삼각대까지 다 해도 10kg을 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중형카메라 세 셋트, 여러 개의 교환렌즈, 큰 삼각대 등 모두 20kg 정도를 짊어지고 다니니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건강이다. 제주에 와서 이렇게 건강해지지 않았으면 지금의 사진 절반도 찍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6. 행운

이렇게 산행을 하고 또 사진을 찍어 만든 홈페이지로 인해 나는 결코 돈으로는 살 수 없는 값진 것을 얻었다. 수필가 목성균 선생님을 비롯한 인터넷을 통해 만난 분들과의 값진 교류, 그리고 또 하나, 내 삶을 바꿀만한 커다란 행운을 얻었다.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 해도 결코 얻을 수 없는 행운을. 2년 전 어느 날 싱겁게 찾아온 그 행운을 나는 나의 모든 사진만큼이나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 동안 산행을 한 날엔 '산행일기'를 써왔는데 어느새 350쪽이 되었다. 거기 있는 기록을 보니까 1996년 7월 한 달 동안 일곱 번이나 산에 올랐고 그 해에 모두 22회나 올랐다. 반면 2000년도엔 한 해 동안 단 두 번밖에 산행을 안 했다. IMF로 주위가 어수선해서 그랬나 보다. 여하튼 '산행일기'는 내 삶의 소중한 기록이 되어 있다. 촬영한 사진만큼이나.

200회 산행을 하며 내가 한라산을 걸어다닌 거리는 등산로 기준 거리로만 했을 때 대략 2,000Km 정도 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

201회 째의 산행을 해서 사진을 찍으려고 한다.

그 다음엔 202회째 산행을 하고....

앞으로 얼마나 더 한라산에 오를 지는 모르겠다.

아마 체력이 떨어져서 이젠 산에서의 기다림이 참 힘들다고 느껴질 때까지 오르지 않을까 싶다.

 

2003년 6월 5일

김 봉 선

 

 

 

산행유정에 대한 소감

목성균 2003/06/07 12:01

대하 소설의 마지막 장처럼 아쉽게 산행유정의 정독을 끝냈습니다. 나는 김 선생님을 한라산 같다고 생각합니다. 한라산 정상을 200회를 오르는 동안 인생의 황금기가 다 갔다는 산행유정의 대목에서 나는 가슴에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홈 입구에 있는 김 선생님의 설산의 비탈에 촬영장비 배낭지고 서있는 모습을 다시 크릭해서 보았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추구하는 삶의 부가가치가 얼마나 되는 것인가. 부가가치세를 매긴다면 과표를 어떻게 잡아야 할 것인가. 케비넷에 하나 가득한 필름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인가. 한라산 같은 김 선생님의 마음에서 잡아야하는데 그게 어디 때 묻은 세리의 눈 같은 내 눈에 잡혀집니까.

사실 나는 한라산을 올라가보지 않아서 한라산의 모습을 모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김 선생님의 모습은 한라산이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늘 맑고 밝아서 상대를 편안히 해주는 모습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은 마음이 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님은 그 마음을 담으려고 한라산에 오르는 것이겠지요.

나도 산에 많이 올라 보았습니다 . 백두대간의 평창 군내 높은 산은 거의 올라 보았지만 직업적인 산행이었기 때문에 김 선생님처럼 산의 진면목에 유의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높은 산에 오를수록 사람의 마음이 산을 닮아간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산행의 목적이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산이 인간에게 주는 자격증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소한 한라산 같은 영봉을 오르는 데는 온몸과 마음을 다 산에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기 때문에 200회의 한라산정 등반을 김 선생님은 무사고로 마쳤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선생님의 얼굴이 한라산 닮아간다는 것은 김 선생님 인생의 실상 아닐까 싶습니다. 삶의 부가가치를 추구하는 김 선생님의 마음은 정정당당하고 선량한 것입니다. 인간의 간교한 술수나 교만한 아집이 아니지 않습니까! 인생의 황금기를 그렇게 다 투자한 그 인생, 그것은 대통령이 되는 것보다 더 높습니다. 하나도 오염이 않된 정상입니다. 김 선생님이 200회의 한라산행 목적이 촬영에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인 것이고 그 산행의 본질은 아름답고 떳떳한 인생 자체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우리 친구들에게 만세삼창을 제창한 것입니다.

 사람에게 안정감을 주는 김 선생님의 모습은 숲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문경 새재의 숲, 새소리, 햇살, 계곡물소리, 별빛들에 물들어 있는 숲, 김 선생님은 사람들에게 그런 동화감을 줍니다. 그것은 물론 천성에 근거하는 것이겠지만 후천적 삶의 영향이 서로 상승효과를 나타내는 선량한 인간의 진면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라산을 다 닮으려면 2백 3백 4백으로도 끝이 없겠지요. 문제는 김 선생님이 한라산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것이므로 어느 목표에 도달하겠다는 교만한 설정치가 아니라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선량한 인간의 산에 대한 탐애로 인해 김 선생님은 산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

산행유정에 감동한 나머지의 횡설수설입니다. 김 선생님을 탐구한 양 늘어놓은 소리가 오히려 김 선생님의 돈독한 삶의 부가가치를 왜곡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산행유정의 내 소감은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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