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에 부는 바람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

Khumbu Himalaya Trekking







[히말라야를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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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를 기다리며


여행에서 나는 자유로웠고, 또 언제나 외로웠다.
떠돌이별처럼 많은 길을 흘러 다녔다.
그러나 항상 따뜻한 힘으로
서로를 끌어당기는 별자리들처럼
나를 우주의 끝으로 사라져 버리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것은 사랑이었다.

류시화의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1. 나를 설레게 한 히말라야
내가 도대체 왜 히말라야까지 가려고 하는 걸까. 많은 준비를 하고 짧지 않은 시간을 내서 그 먼 데까지 왜 가려는 것일까. 거기까지 가서도 편하기는커녕 고생고생 하는 짓을 왜 하려는 것일까.
‘평소 사회생활에서 누적된 스트레스를 풀고 삶의 의욕을 재충전하기 위해서’라는 고상한 이유가 아니다. 내게 그런 고상함은 없다. 어느 사이트에 올라온 히말라야 트레킹의 기록과 사진을 보고는 온 몸에 작은 전율이 일었다. 깨진 유리처럼 날카로운 하얀 설산, 그 설산 위의 짙고 푸른 하늘, 풀 한 포기 없는 마치 지구가 갓 태어날 때의 모습일 것 같은 황량한 풍경.... 이제까지 TV에서 히말라야를 촬영한 영상을 많이 봤지만 전문 방송촬영인이 아닌 트레커들이 찍어 온 사진과 여행기에선 그와는 또 다른 짙은 감동이 있었다.

아... 전문 산악인이 아니어도 이런 풍경과 마주할 수 있구나... 난 이제까지 그걸 알지 못했다. 아니. 실은 트레킹이란 말을 들어본 것도 불과 몇 년 전이었다. 알고 나서도 지금으로 말하자면 제주의 ‘올렛길’ 정도를 걷는 줄만 알았지 해발 5,000미터가 넘는 에베레스트나 안나푸르나의 베이스캠프까지 일반인들이 다가가서 그 웅장한 설산과 마주한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그런 데는 산악인 고상돈 씨나 엄홍길 씨 같은 분들만 가는 줄 알았다.

그래, 그렇다면 나도 한 번 가보자. 언제...? 나이 한 살이라도 더 먹기 전에 당장 가자. 정말로 가자. 나도 그 풍경 속에 서서 작은 일부가 되어 보자. 가다가 지쳐 걷지 못해 되돌아오게 되더라도 시도라도 해보자. 그래야 죽을 때 후회가 없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이가 60을 넘기 전에 좀 더 젊어 체력이 있을 때 왜 이런 걸 모르고 살았는지 후회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또 그러면서도 아직 나이가 70살이 되지 않은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이제라도 히말라야에 갈 생각을 한 걸 다행으로 생각하자고 했다.


2. 준비하며 기다리며
2010년 8월 17일, 옛 직장 동료였던 박진태 님이 내 홈 사랑방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해발 5550m의 칼라파타르라는 데서 촬영한 링트렌(Lingtren 6713m)봉의 웅장한 모습과 만일 여기에 가고 싶다면 가이드 해드리겠습니다 라는 글과 함께.
석고로 빚은 것 같은 하얀 설산을 보는 순간 숨이 막혔다. 꼭 가고 싶다는 마음과 그러나 아직 아무 준비도 없는데 하는 망설임, 그래서 결국 고마운 마음만 받기로 하고 설레는 마음을 가라앉혔다. 지금으로선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한 달도 더 지난 9월 28일, 박진태 님으로 부터 전화가 왔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트래킹하러 모레 출발해서 10월 19일 돌아오는데 내년에 갈 때는 같이 가자고 했다. 나도 그제서야 결심을 하고 그러자고 했다. 앞으로 1년이면 준비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결심만으로도 마음이 설렌다.
내 나이 이제 만 64살 언제 그런 길을 다시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즉시 본격적인 준비에 들어갔다. 촬영장비를 가볍게 하기 위해 애용하던 1Ds Mark lll(1210g, 배터리 185g)를 팔고 그 돈으로 5D Mark ll(810g 배터리 125g)를 사고 24-70mm 렌즈(950g)를 대신 할 24-105mm 렌즈(670g)를 구했다. 이것만으로도 740g이나 가벼워진다. 트레킹 중 내내 목에 걸고 걸어야할 장비에 이 정도의 경감은 엄청나게 크다.

박진태 님의 후의
11월 9일,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마치고 귀국한 박진태 님이 나를 위해 일부러 제주의 우리 집에 와서 1박을 하고 갔다. 25년만의 반가운 만남이었다.
새벽 4시가 되도록 맥주를 마시며 트래킹 이야길 했다. 내게 트레킹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그에 대한 준비를 하도록 울산에서 부산을 거쳐 제주까지 와준 마음이 너무나 고맙다. 더구나 일부러 트레킹에 사용했던 배낭과 웨스트색 그리고 쿰부히말라야의 지도까지 가져와서 불안해하지도 말고 걱정도 하지 말라며 나를 안심시키고 자세한 이야기를 해줬다. 내년 10월에 함께 가기로 하고 그때까지 남은 1년간 준비하기로 했다.

며칠 후 박진태 님이 준비물 목록을 보내왔는데 무려 122가지나 된다. 꽥~ . 그런데 그것도 충분하지 않다고 한다.

우산/신동호 님의 조언
트레킹을 준비하다가 어느새 새해가 되었다. 1월 14일 서울에 갔다가 인디카의 우산/신동호 님을 만났다. 처음 뵙는 우산 님은 이미 네팔 트레킹을 비롯한 여러차례의 해외여행을 한 분이어서 많은 조언을 해 주셨다. 그러면서도 네팔에 가보면 다시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없어질 것이니 가기 전에 미리 주변 정리를 하고 가는 게 좋다는 '진심어린' 조언도 하셨다.
으음.... 네팔엔 예쁜 여자가 디기 많은가 보다.... 그럼 지금까지 37년을 함께 살아온 이군은 어떻게 하나....

가자, 히말라야로
우려하던 대로 박진태 님이 다른 사업소로 발령이 나 금년엔 동행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단체로라도 가려고 인터넷을 열어 혜초트레킹에 들어가 보니 3월 말에 출발해서 14박 15일간 고쿄와 칼라파타르를 동시에 다녀오는 상품이 있다. 10월에 가려는 계획을 6개월 앞당기기로 했다.

가자.
이제 가지 않으면 내 나이 곧 일흔, 더 우물쭈물할 새가 없다.

자다가 한 밤 중 잠이 깨면 히말라야 생각에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인터넷을 연다. 스스로 히말라야에 빠져들고 있음을 실감하는 매일이다.
내 평생 연애할 때도 이런 적은 없었다.

엊그제 삼척 봉식 형님께 네팔에 갈 계획이라고 하니 걱정을 많이 하신다. 내 나이 환갑을 훌쩍 넘었는데도 형님이 보시기엔 내가 아직도 물가에 가는 애 같으신가 보다. 그런데 가면 조심하라는 의례적인 말씀이 아니라 진심으로 여러가지 상황을 예시하며 하시는 걱정이 내가 군에 입대할 때와 같다. 그때도 형님은 내가 군대생활을 어떻게 할지 많은 걱정을 하셨다. 큰 걱정을 하셨다.

트레킹 신청
1월 24일, 혜초에 트레킹 신청을 했더니 오후에 일정표와 안내문을 메일로 보내왔다. 3월 31일 인천을 출발해서 카트만두에 도착하고 다음 날 네팔 국내선으로 루크라까지 가서 트레킹을 시작한 후 4월 14일 자정 무렵 다시 인천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상세한 내용이 담겨있다.

오늘부터 새벽산책을 할 때 배낭에 물은 가득 채운 카멜백도 넣었다. 35리터 작은 배낭에 카메라와 세 개의 렌즈 그리고 삼각대와 물주머니까지 수납하고는 늘 하는 대로 두 시간 이상을 걸었다. 여기에 가벼운 옷가지와 간식 정도를 더 넣으면 트레킹 할 때의 무게가 될 것이다. 한라산을 산행할 때 늘 짊어지던 65리터짜리 배낭과 장비에 비하면 개나리봇짐 같지만 네팔에서 하루 일곱 시간에서 아홉 시간을 걸으며 해발 5,000미터 이상을 오른다고 생각하면 결코 간단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간단하기는커녕 10kg이나 되는 이 배낭도 너무 무거운 게 아닐까 걱정이 된다.

여전히, 자다가 잠이 깨면 히말라야 생각에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도 그럴까.

베개
외지에 나가면 잠을 자는 게 큰 문제고 그중 베개가 맞지 않아 깊은 잠을 못 자는 경우가 많다. 특히 닭털을 넣은 물렁물렁한 베개는 난 질색이다. 머리가 흔들려 안정이 되지 않고 두통까지 생긴다. 그래서 이번엔 베개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무게가 덜 나가게 스티로풀 박스를 잘라 적당한 높이로 몇 겹 쌓은 후 테이프로 동여매고 가루가 날지 않게 다시 비닐봉투로 싸서 타올로 감으니 아주 근사했다.
그런데 지난밤에 잘 때 그 베개를 베보니 뭔가 모자랐다. 씨에프처럼 2%가 모자랐다. 베개와 내 목과 머리가 하나가 되질 않고 따로 놀았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히말라야까지 내 베개를 가져가야겠다...><

인터넷으로 주문한 차량의 시거잭용 배터리 충전기가 도착했다. 잭을 분해해보니 선을 자를 필요도 없이 단자를 악어집게로 연결하면 되는 것이다. 납땜인두를 꺼내 간단히 연결선을 만들었다.

불안
야크존에 가보니 며칠 전인 1월 23일에 올린 이런 소식도 들어와 있다. 카트만두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가서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이 시작되는 루크라에 6일째 비행기가 이착륙을 못해 140여 명의 트레커가 발이 묶여 있다는 소식이다. 무시라.....

인터넷 서핑을 하며 쿰부 히말라야에 관한 자료를 읽으면 읽을수록 트레킹에 대한 불안감이 커진다. 특히 트레킹을 마친 후 루크라에서 카트만두로 되돌아가는 국내선 항공기가 결항되어 1주일씩이나 루크라에서 발이 묶이는 경우도 있고 3~4일씩 묶이는 경우는 여러 댓글에서 나온다. 그렇게 발이 묶여 무거운 장비를 짊어지고 버스를 탈 수 있는 데까지 며칠을 걸어 ‘탈출’한 사람도 있고 900달러나 주고 헬기를 타고 카트만두로 돌아 간 사람도 있다.
1주일씩이나 비행기가 뜨지 않으면 트레킹 후 루크라에서 발이 묶인 사람도 고통스럽겠지만 오랜 기간 준비해서 쿰부 히말라야에 가려고 네팔에 갔다가 루크라에 가지도 못하고 카트만두에서 기일을 다 보내버린 사람들은 또 얼마나 허망할까.

그러나 그런 걱정 하지 말자. 어차피 3월 31일엔 네팔엔 갈 것이고 걱정거리가 생기면 그때 하면 된다. 생길지 안 생길 지도 모르는 일에 걱정을 미리 당겨서 할 필요는 없다. 좀 더 철저히 준비하고 몸을 만들고 네팔에 가서 트레킹을 시작하면 고소증이 생기지 않도록 트레킹 수칙을 잘 지키는 일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외장하드 충전기
사진 저장용 외장하드 충전 문제가 이제야 해결되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5V용 충전식 배터리 4,400mA짜리가 있기는 있는데 가격도 만만치 않고 한 번만 충전하면 되는데 그런 돈을 쓰기도 아까워 웬만한 사진은 Raw 포맷이 아닌 JPEG 포맷으로 촬영하려고 했다.

기분이 좀 꿀꿀하지만 어쩌랴. Raw 파일로만 하다가 사진을 마음대로 못 찍는 것보다야 낫지. 그런데 오늘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차량용 시거잭 중에서도 12V를 5V로 감압하는 게 있다. 진작 알았으면 지금까지 고민 걱정 불안하지 않았을텐데 .... 충전식 배터리를 사는 것보다 값도 1/4밖에 안 되고 더군다나 카메라 배터리 충전 때문에 어차피 12V 전원을 가져가야 하니 그대로 쓸 수가 있어 아주 잘 된 일이다.

그런데 그걸 파는 사람에게 차량에서 쓸 게 아니라 6볼트 랜턴 배터리 두 개를 직렬로 연결해 12볼트로 만든 후 약어집게로 시거잭에 연결해서 충전하려고 한다니까 시거잭을 차량에 쓰지 않고 그렇게 하면 큰 일이 난다고 하다. 어떻게 큰 일이 나냐고 하니까 소트가 생길 수가 있고 그러면 기기가 망가질 수도 있다고 한다. 차량의 12볼트 배터리와 랜턴 배터리 두 개를 연결한 12볼트 배터리가 용량 외에 뭐가 다르냐고 했더니 그건 잘 모르지만 여하튼 그렇게 쓰면 안 된다고 한다. 하하하하하~~~ ^^* 실은 나도 전기회사 40여 년을 다녔으면서도 이런 건 잘 모르거든요~~ ^^*

준비 끝
어느 새 3월이 되더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한동안 좀 많이 걸었더니 처음엔 오른쪽 정강이에 그리고 다음 날엔 왼쪽 정강이에 근육통이 와서 이틀간 새벽산책을 걸르기도 했다.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못하다가 이젠 더 이상 무리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는 모양이다.
이런 일이 네팔 트레킹 중 생기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 거실에 쌓아놓은 물건들이 제주도의 작은 오름만하다. 혜초에서 보내 준 90리터짜리 카고백에 넣어보니 내 배낭에 넣을 촬영장비를 제외하고도 한 백 가득하다. 무게도 20kg이 넘는다.
5일 전부터는 그동안 '고생'한 몸을 다독인다고 산책 때도 배낭을 안 메고 '순수한' 산책만 하려고 했는데 그것조차 내 마음대로 안 된다. 어느 월간지에서 내려온 분들의 취재일로 어제 그제 이틀간 잠 한숨 못자는 강행군을 하다가 오늘 점심 때에야 비로서 '자유시간'이 되어 카메라와 외장하드의 배터리를 만충전을 하는 등 마지막 할 일들을 했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3. 떠나며
쿰부 히말라야 트레킹을 준비하는 지난 6개월간 총 1,800km 이상을 걸었다. 4,500여 리를 걸으며 그렇게 준비한 몸이 히말라야 산자락에서 어떻게 적응할지 이제 확인하려고 한다.
걷다가 고소적응에 실패하거나 또는 걷기가 너무 힘들어서, 아니면 히말라야의 밤하늘이 너무 슬퍼서 더 가지 못하고 도중에 포기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내가 결정한 이 여정에 조금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히말라야를 향해 가는 길을 이렇게 시도라도 한 것에 위안을 가질 것이다.

준비하는 동안 걱정을 하면서도 늘 내 마음을 편하게 해 준 이군을 비롯한 가족들의 사랑, 그리고 적지 않은 여비를 보내주며 먼 길 잘 다녀오라고 격려해 준 동기 친구의 우정을 가슴에 담아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이제 떠난다.
산과 신들의 나라 네팔-. 히말라야 설산을 흐르는 차가운 바람을 만나고 고쿄리와 칼라파타르 정상에서 펄럭이는 오색 타르초(Tharchog)와 룽다(Lungda)도 만날 것이다. 소리 내며 내 곁을 스친 바람은 한라산으로 또 내가 사랑하는 사람 곁으로도 흐를 것이다.


레쌈 삐리리 레쌈 삐리리 우레러 자우끼 다라마 반장 레쌈 삐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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