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삼척까지2
sun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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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1. 울릉도에서 삼척으로]    [2. 9월의 무릉계곡]    [3. 추억을 따라가다]    [4. 봉황촌과 통배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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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2 제주 여객선터미널



1. 울릉도에서 삼척으로


울릉도 여행을 준비하며
울산 살 때인 1984년 5월 7일부터 11일까지 4박 5일간 결혼 10주년을 기념해서 울릉도를 거쳐 포항 보경사를 둘러 온 적이 있다.
그로부터 24년이나 지났다.
그동안 몇 번이나 다시 울릉도 여행을 생각하면서도 나서지 못하다가 이제야 집을 떠나게 되었다.
그래, 여행의 기쁨은 나서는 자의 몫이라 했다. 울릉도 여행 가자니까 선뜻 대답을 못하고 꾸물럭대던 이군도 며칠 전 마라도를 다녀와서는 '가자'고 마음을 바꾸었다.
마라도 갈 때 배 위에서 양팔을 벌려 타이타닉 흉내를 내더니 좀 더 큰 배에서 그렇게 하고 싶었나보다.

일단 가려고 합의하고 나니 마음이 바빠진다.
제주항 부산항 포항항 울릉도의 배편을 알아보고 울릉도의 관광지도를 찾아 프린트 하고 여행일정을 짜고 경비를 가늠해보고 밥 해 먹을 초소형 가스렌지도 사는 등 여행을 준비하는 바쁜 즐거움이 넘친다.

오는 날 부산에서 시간이 많을 것 같아 여객선터미널 부근의 용두산공원 태종대 자갈치시장 등의 지도도 프린트했다.
오고가면서 오랜 시간 배를 타야하므로 등산용 가벼운 모포도 찾아뒀다.

이렇게 챙기고 챙겨도 "분명" 뭔가 빠트린 게 있긴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촬영장비' 항목의 몇 개의 렌즈, 삼각대, 릴리즈 정도는 몰라도 카메라를 빠트리지 않았다면 그건 얼마든지 '용서'할 수 있는 일이다. 사람 하는 일이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싶다.

오랜만에 화장품 몇 개를 사고 여행용 샘플까지 여러 개 얻어 온 이군은 그것들을 거실 바닥에 펼쳐놓고 어떻게 사용하는지 몰라 사용설명서를 읽어보고 찍어 발라보고도 미심쩍은지 물어본다.
"이거 어캐 쓰는 건가요...?"
"...으음...보자... 멀티 모이스트 엑스트라 크림...? 으음... 이거 성분이 파라옥시안식향산에스텔, 포타슘하이드록사이드.... 뭔진 몰라도 디기 좋은 거 같은데..."

24년 전의 사진 몇 점도 프린트했다. 성인봉 정상에 타임캡슐을 묻어뒀는데 거기에 그대로 있을 것 같지가 않다. 그땐 정상을 알리는 입간판이 하나 있을 뿐이었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큼직한 바윗돌에 성인봉이라고 쓴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여하튼 등산지도도 챙기고 성인봉 정상에서 나리분지로 하산한 후 도동으로 돌아오는 버스시간표까지 챙기다보니 프린트한 종이만 열 장이 넘는다.



20080922 제주를 떠나다
아침밥을 먹자마자 짐을 챙겼다. 미리 만들어 놓은 준비물리스트를 하나하나 체크하면서 거실 바닥에 모아놓으니 작은 집의 이삿짐 정도다. 며칠 집을 떠나 산다는 게 이렇게 일이 많다.

어제 오후 시내에 나가서 티셔츠를 사 온 이군은 마음에 좀 안 드는지 밤에도 입어보고 새벽에도 입어보더니 결국 오후에 다시 나가 환불해 왔다. 마음에 좀 덜 들더라도 그냥 입었으면 좋으련만 스스로도 그 성격 어쩔 수가 없나보다.

준비물을 내 촬영장비용 배낭과 이군의 소형 배낭 그리고 크지 않은 여행용 가방에 넣으니 충분했다. 냉장고용 전원만 남기고 분전반의 스위치까지 모두 내렸다. 발코니를 비롯 모든 창문을 안으로 잠그고 가스밸브도 다시 한 번 점검하고는 17:00 집을 나섰다. 택시를 기다리며 아파트 앞에서 기념사진도 촬영했다.

제주항 여객터미널에 도착하니 5시 20분. 출항시간인 7시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일찍 집을 나서길 잘한 것 같다. 집에 있으나 터미널에 있으나 기다리는 건 마찬가지지만 역시 집을 나서야 여행기분이 나고 티셔츠 때문에 약간 가라앉았던 이군도 환한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서기도 한다.
제주에서 부산까지 3등 운임이 39,000원인데 제주에 사는 사람은 20% 할인이 된다며 31,500원에 끊어준다.

해가 진 후인 18:30분부터 개찰이 시작되고 코지아일랜드호에 승선하자마자 카메라의 감도를 높여 사진 몇 장을 더 촬영했다. 예상대로 비수기의 객실은 여행객이 많지 않아 운동장 같이 너르고 헐렁하다.
GPS 작동을 감안해서 창가에 배낭을 내리고 진을 쳤다.

19:00 코지아일랜드는 육중한 몸을 천천히 부두에서 떼어내고는 부산을 향해 헤엄치기 시작한다. 식당을 찾아 카레라이스와 김치찌개를 주문했는데 둘 다 맛이 있어 거의 다 먹었다. 밥 생각이 없다며 하나만 시키라던 이군은 돼지 같이 잘도 먹는다. 그래야지, 잘 먹어야 지치지 않고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지.

밥 먹고 한 시간도 안 되었는데 객실 바닥에 누운 이군은 잠이 들어버린다.
피곤했나보다.
여행은 즐거운 거지만 출발 전 이것저것 준비하고 마음 쓰면서 작은 스트레스나마 받지 않을 수가 없다.
잠이 든 이군 옆에 노트북을 꺼내놓고 엎드려서 이 여행기를 쓰고 있다.

차를 타면 졸음이 오는 것도 일종의 멀미라는 말도 있고 차의 진동이 수면리듬과 흡사해 잠이 온다는 말도 있는데 배의 잔잔한 진동은 차의 그것보다 수면리듬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이렇게 큰 배에 인터넷이 안 된다는 게 유감이다.



20080923 포항에서 생긴 일
03:00 GPS의 배터리를 교체했는데 객실안인데도 즉시 교신이 시작되어 녹색불을 깜박거린다. 작은 배터리 하나로 작동하는 이 조그만 기기가 인공위성의 도움을 받아 10초마다 자신의 위치를 저장한다는 게 참 신기하다.
밖에 나와보니 하늘엔 별이 총총하고 반달이 떠서 밤바다를 내려다 보고 있다.
바람에 흘려 엔진 배기에서 묻어나는 익숙한 기름냄새, 이런 기름냄새를 맡으며 20대부터 50대 후반까지 직장생활을 했으니 어쩌면 내 삶의 냄새가 아닐까 싶다.
이군은 한 번 깨지도 않고 잔다. 다행이다. 잠 설쳐 여행에 짜증을 내거나 하면 내가 피곤할 일이다.

05:40분 아직은 어두운 시간 코지아일랜드는 긴 항해에 지친 몸을 부산항 여객선 부두에 갖다대었고 몇 안 되는 승객들과 함께 철계단 소리를 딸강딸깡 내며 하선했다.
조금 걸어 지하철 1호선 중앙동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07:00에 종점인 노포동역에 도착하자마자 포항행 무정차 버스에 탔고 버스는 우리 부부를 포함 단 세 사람의 승객을 태우고는 포항으로 달렸다. 이 대형버스가 세 사람만 싣고 가다니 요즘의 가히 살인적인 기름값을 생각하면 참 아깝다는 생각이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까. 여름 성수기가 지나니 버스승객까지 이렇게 줄어들었나보다.
아침식사는 포항 가서 배표를 끊은 후 먹기로 했다.
숙면을 한 이군은 소풍 가는 아이처럼 들떠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데 차창 밖으로 양산-석계리라는 이정표가 스친다.
석계리 천주교공원묘지에 장모님이 누워 계신다. 비록 가난하게 사셨지만 늘 나를 위해 뭔가라도 해 주려고 애 쓰셨고 더구나 이군을 낳아 길러 내게 주셨으니 이보다 더 큰 사위사랑이 없다.
경주를 지나면서부터 비가 내린다. 햇빛 나지 않아 눈이 부시지 않으니 흐린 날에 비가 오는 것도 나쁘진 않다.

08:28 포항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포항터미널'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버스터미널 간판이 왜 큰 글씨의 태광실업 흥국생명 아래에 그보다 작은 글씨의 '포항터미널'인지 이상하게도 거부감이 생긴다. 설사 간판 만들어 세우는데 경비를 절약하기 위해 태광실업 흥국생명의 도움을 받았다해도 이건 아니지 않을까 싶다.

이군이 길가 포장마차에 가서 호도과자를 한 봉지 사왔다. 따끈따끈한 게 맛이 있다.
택시를 타고 포항여객선터미널로 가는데 제주의 한 부장한테서 메시지가 왔다.
'멋진 여행하세요. 사모님께 혼을 실어 봉사하시고요.'
뒷 자리에 앉은 이군에게 '한 부장이 당신에게 혼을 실어 봉사하라는 메세지를 보냈어.' 했더니 이군이 '에구 고마우셔라~!'하는 데 운전기사가 한 마디 거든다.
"그 분 엄청 공처가시지요? 그 정도 분이라면 전국공처가협회 회장깜입니다."
"이분 아직 장가를 안 간 마흔 살 넘은 총각입니다."
"아이구, 그러면 그렇지~!! 마누라한테서 뜨거운 맛을 보지 않아 그러는 걸 겁니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자료대로 택시는 6.5Km의 거리를 약 12분만에 달려 우리를 포항여객선터미널에 내려줬다. 배는 10시 반에 있는데 터미널 대합실엔 사람들이 와글와글하다.
일찍들도 나왔네 하면서 매표소로 가니 사람들 20여명이 줄을 서있어 이군을 서게 하고 카메라를 꺼내 우선 터미널 주위를 몇 컷 촬영했다. 다시 매표소에 가보니 줄이 줄지도 않아 웬일일까 하고 앞으로 가보니 표를 팔지도 않고 '선표매진'이라고 큼지하게 쓴 팻말이 있다.
"....??"
거기 직원에게 -설마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울릉도 가는 표가 없느냐니까 오늘은 물론 앞으로 일주일 후인 9월 30일까지의 표가 모두 예약되어 없다고 한다.
말 그대로 '엥~?'하는 소리가 나온다. 아니, 비수기여서 배도 텅비었고 제주를 오가는 거의 모든 비행기도 최대 50%까지 운임을 할인하는 판에 이게 무슨 말인가..... 기가 막혔다.

얼마 전엔 제주에서 부산 가는 배표를 예약하려고 전화를 했더니 요즘 비수기여서 표가 남아도니 예약 필요없이 그냥 나오면 된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는데.... 맨 처음 '이렇게 챙기고 챙겨도 "분명" 뭔가 빠트린 게 있긴 있을 것 같다'는 글을 쓸 때 이런 상황은 예상치도 못했는데 "분명" 히 빠트린 건 바로 을릉도 가는 배표를 예약하지 않은 것이었다.

울릉도의 등대장 김혜탁 님에게 전화를 해서 상황을 전했더니 '두 분이라고 했지요? 걱정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한다. '옛날' 삼척 살 때 서울에서 고속버스표를 못 사면 암표를 사기도 했는데 지금의 이 세상에선 꿈 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승선시간이 다 된 10시 경 등대장 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 오늘 표는 도저히 안 되고 내일 것은 되는데 다만 울릉도에서 나오는 표는 예약할 수가 없다고 한다.....

말 그대로 '우째 이런 일이~!!'생긴 것이다.
이제 어떻게 할까.
1.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서 놀다가 밤배를 타고 제주로 돌아간다.
2. 부산으로 가서 유람선을 타고 남해안을 여행한다.
3. 목포로 간 후 이군이 구경하지 못한 홍도엘 간다.
4. .....

궁리를 하고 있는데 이군이 삼척에 가고 싶단다. 지난 여름 어머님 생신 때도 몸이 아파 못갔는데 이왕 나온 김에 삼척에 가서 어머님도 뵙고 삼화사 무릉계곡 소금강 등을 구경하면 좋겠다고 한다.
안 되는 일은 가능한 한 빨리 포기하고 거기에 조금의 미련 조차 남기지 않는 게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좋다. 아니, 그건 다 아는 말이지만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게 두부 자르듯 안 되니 문제가 아닐까.... 싶지만 우린 즉시 그렇게 하기로 가볍게 합의했다.
우리가 울릉도에 가지 못하는 것도 신령님과 하느님과 부처님과 알라의 뜻이 분명한진대 그분들의 뜻에 거역하는 건 큰 실례가 아닌가. 이번 여행코스는 이미 5,000년 전에 이렇게 정해진 게 틀림없다.



가자 삼척으로~!!
다시 '태광실업 흥국생명 포항터미널'로 돌아와서 우동으로 아침을 먹고 11:20분 발 무정차버스를 타고는 삼척으로 달렸다.
여행계획 때부터 울릉도 안 가려고 꼼지락대던 이군은 아주 잘 되었다는 표정이다.
그래, 도라지 캐러 산에 갔다가 도라지 없다고 그냥 돌아오나? 도라지 없으면 '아쉬운대로' 산삼이라도 몇 뿌리 캐와야 할 게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우린 삼척 가서 산삼이라도 몇 뿌리 캐오기로 했다. 아쉬운대로.

메시지가 왔다.
'이젠 울릉도 가는 배를 타셨겠군요.'
즉시 답을 보냈다.
'지난 밤 꿈속에서 신령님이 나타나 북쪽으로 가라 하셨어요. 그래서 지금 행선지를 바꿔 삼척으로 가고 있습니다.'

비가 내리다말다 하는 강원도길을 달리고 달려 포항을 출발한 지 3시간만인 14:20분에 '삼척종합버스정류장'(간판이 이래야 한다)에 도착했다. 삼척에 도착하기 전에 큰형님과 작은형님께는 곧 삼척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했지만 어머니한테는 하지 않았다. 어머니 아시게 되면 '애비야 아직 멀었나, 왜 아직 안 오노'하는 전화를 몇 번이나 하셨을 것이기 때문이다.

연락도 없이 온 우리 부부를 보고 어머니는 반가워서 어쩔 줄 몰라하셨다. 뼈만 앙상한 손으로 내 손을 잡으시며 잘왔다는 말씀을 몇 번이나 하셨다.

저녁식사는 모두 큰형님댁에 모여서 했다. 하긴 모두 모인다해도 작은형님 내외분만 오시면 되는 거지만. 소주 한 잔 곁들인 식사를 하면서 행복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역시 피는 어쩔 수 없나보다.
이제 환갑을 맞으신 큰형수님은 25일부터 중국여행을 하신단다.
"형수 님, 중국에선 한국여행객들을 잡아서 벽돌공장에 팔아 먹는대요. 일단 거기 들어가면 10년은 일해야 빠져나올 수 있다는데요."
말은 형수 님한테 했는데 대답은 형님이 하신다.
"내게 그런 대박 행운이 올까 싶지 않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어쩌겠나."
큰형님의 말씀에 모두들 허리를 꺾는다.

GPS를 노트북에 연결해 제주 출발해서 부터 삼척 도착까지의 이동경로를 확인했다.
이군은 큰형수님과 거실에서 자고 난 어머니 곁에서 잤다.
잠결에 몇 번이나 어머니 손을 잡으면 그때마다 어머니도 내 손을 꼭꼭 잡아주셨다.






어떻게 사용하는 화장품인지 몰라 참으로 난감하다.





마치 이사가는 집 같다





아파트 현관 앞에서 기념촬영도 하고





제주항 여객선터미널의 대합실. 성수기 지나니 이렇게 텅텅 비었다.





비수기라해도 사진은 찍힌다.





다니는 차도 없어 도로 한복판에서 사진 찍어도 문제 없다.





.....??





2층 대합실에서 승선대기중





타이타닉 미리 연습 중





밤 3시 22분. 멀리서 등댓불이 반짝인다.





부산이 가까워지는가 보다.





마침내 부산내항 깊숙이 들어왔다.





접안 후 배 위에서 촬영했다.





노포동 버스터미널에서





아침 안개가 살찍 낀 가을 들판





'태광실업 흥국생명 포항터미널' 앞에서





이군 혼자 어디론가 간다.





지갑을 뒤지네. 뭘 사려는 걸까...





아항~~ ^^*~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증명사진 한 장~. 여기까지는 '봄날'이었다.





영덕 쯤일까, 제주에 살면서도 바다는 늘 좋다.





점심 먹으라면서 이렇게 엉성한 곳에 차를 세운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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