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삼척까지
sun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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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을 달리며-





제주에서 삼척까지

20080808-0812


1. 배를 타고 가자

제주와 인천 그리고 제주와 부산을 낮시간에 오가는 배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전에 홍도에 갈 때처럼 작은 섬들을 촬영하면서 햇빛이 보석처럼 쏟아지는 바다를 보면서 여행을 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불행하게도’ 인천과 부산을 오가는 배들은 모두 저녁 일곱 시 경에 출항한다.
밤새 달려가서 아침에 도착해야 화물을 내리고 일을 봐야 하는 ‘효율성’ 때문일 것이다.
늘 그렇지만 효율성이란 사람 사는 멋을 반감시킨다는 뜻을 좀 유식하게 표현한 말이 틀림없다.

8월 11일 아침을 삼척에서 어머니를 비롯한 우리 형제 등 모든 가족이 함께 해야 한다. 연 중 단 한 번 우리 가족들이 모두 함께 하는 날 어머니의 생신일이기 때문이다. 형제들이 서울 인천 여수 대전 삼척 제주 등지에 흩어져 살아서 제주에 사는 나를 제외한 모두가 차를 타고 간다.
나는 늘 원주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삼척에서 형님이 강릉을 거쳐 원주공항까지 마중을 나왔고 돌아올 때도 태워주곤 했는데 이번엔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가서 삼척까지는 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가장 저효율적인 여행을 하면서 그 여행을 즐겨보려고.



2. 8월 8일-제주에서 부산까지

8월 8일 오후 5시 이군의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7시 10분에 출항하는 설봉호를 타려고 미리 예약을 해놨는데 6시까지 와서 승선권을 끊으라는 연락이 와서 좀 일찍 나선 것이다.
휴가철이어서 그런지 제주항 1호 터미널 대합실은 여행객들이 제법 많다. 매표소에서 35,000원을 주고 승선권을 받았다. 가끔 허여멀쑥한 외국인도 보이고 단체로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보인다. 사진 몇 컷을 찍고는 6시 40분 카페리 설봉호에 승선했다.

하늘은 가을하늘처럼 맑다. 습도도 낮아 끈적거리지도 않고 미풍이 불어와 덥지도 않다.
그런데도 왠지 기분이 가라앉아 즐겁지가 않다. 그렇다고 언짢은 것도 아니지만 여하튼 여행하는 기분치고는 좀 그렇다.
왜 그럴까. 혼자 하는 여행이라서 그럴까.

매점에서 물 한 병과 싸만코 하나를 사들고 배 맨꼭대기의 상갑판에 올라갔다.
해가 많이 기울어서 제주항 쪽으로 완만한 경사지 위에 서있는 건물들이 백열등 아래에서 처럼 오렌지색으로 빛나고 있다. 지금까지 거의 본 적이 없는 색감이다. 늦은 오후의 태양빛과 옅은 운무가 만들어내는 노란색과 주황색이 혼합된 이 색감- 그래, 호주여행 때 이른 아침 시드니에서 본다이비치로 갈 때의 건물들이 이런 색감이었지. 참, 어느 영화에서 본 지중해 연안의 작은 도시에서도 이런 색감을 본 적이 있었어.
푸른색과 녹색이 주류를 이루는 내 사진과 이런 색감은 전혀 닮지 않았는데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마음을 끌었다. 조금 전의 가라앉은 기분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어서 촬영해야지.
일출일몰시의 근사한 색감은 순식간에 변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
양팔굼치를 난간에 세우고 촬영을 시작했다.
ISO감도를 400으로 올려 좀 더 빠른 셔터속도를 확보하고는 한 컷 한 컷 미러를 올려가며 조심스레 셔터를 끊었다.
참 좋다.
화인더로 보는 것만으로도 느낌이 좋다.

7시 10분, 설봉호는 커다란 몸을 부두에서 뗀 후 서서히 제주항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제주시가지 뒤로 한라산이 오른쪽 자락을 구름에 가린 채 서 있다. 부두와 항구의 건물들과 한라산 등이 보기 좋게 어울려 있다. 계속해서 셔터를 끊었다. 제주에 23년째나 살면서도 저녁 무렵에 배를 타고 제주를 떠나보긴 처음이다.

멀리 화북과 삼양동 그리고 내가 9년 반이나 근무했던 북제주화력발전소를 뒤로 하며 배는 속도를 더했다. 수평선에 걸려있던 해는 마침내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커다란 오렌지색 구름 하나는 차츰 짙은 붉은색으로 변해갔다.

식당을 찾아 저녁식사를 하고 객실로 가니 TV에서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을 보여주고 있다. 8이라는 숫자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이라서 삼복더위인 8월 8일을 올림픽 개막일로 정했다고 한다. 올림픽이 순수한 스포츠행사에서 변질되었다고 하나 그래도 지구상 최대의 스포츠행사임엔 틀림이 없을 것이다.
100년을 기다렸다는 거대 중국의 베이징 올림픽에 중국인들이 거는 기대와 자존심은 그저 짐작만 할 뿐이다. 화약을 발명한 나라답게 어마어마한 불꽃을 쏘아 올리며 화려한 개막행사가 계속되는데도 객실의 여행객들은 별로 눈여겨 보는 사람이 없다. 올림픽은 올림픽이고 우선은 긴 밤 시간을 좀 더 편하게 보내고 싶은 게 더 큰 바램인가보다.
인공위성으로부터의 위치정보 수신이 끊기지 않도록 GPS를 창쪽에 걸어두고는 바닥에 누워 잠을 청했으나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기만 했다.
'궁궁궁궁궁궁궁궁....' 단조로운 엔진소리를 내며 설봉호는 부산을 향해 캄캄한 밤바다를 헤쳐나갔다.





제주여객선터미널의 2층 대합실





승선 후 매점에서 샀다. 정가 1,000원인 싸만코가 설봉호 매점에선 1,100원이었다.





24-70mm 렌즈로는 우측 하단의 공간을 메울 수가 없어 난감해 하고 있는데 화인더 밖에 주차해 있던 하얀 승용차 한 대가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설봉호가 제주항을 떠나기 시작했다. 멀리 한라산 자락의 한 켠은 구름이 가려주고...





제주항을 떠나자마자 해는 수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삼양동 화북동 한라산 그리고 별도봉과 사라봉을 함께 담았다.





1986년부터 1995년까지 9년 반이나 근무했던 삼양동의 북제주화력발전소(현 제주화력발전소)





해가 진 후의 시원한 상갑판 풍경





"신령님 삼척에 다녀오겠습니다아~~!"





마지막 빛....



3. 8월 9일-부산에서

5시, 창밖에 불빛이 보여 밖으로 나가보니 배는 이미 부산 내항을 들어가고 있다. 이른 아침의 부산항을 촬영하려했는데 배가 너무 일찍 항내로 들어서고 있어 내 계획은 계획으로 끝나버렸다.
하늘엔 짙은 구름까지 덮여 항내의 불빛 외엔 거의 암흑이다.
처음으로 카메라의 감도를 3200까지 올리고 촬영을 시작했다. 배가 움직이지만 않아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겠지만 셔터속도를 확보해야 하니 어쩔 수가 없다. 여기저기 불빛을 촬영하다보니 날이 차츰 훤해졌다.
05:25분, 예정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부두에 닿았다.
하선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 카메라가방을 잃어버렸다면서 배의 직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길을 물어 조금 걸으니 지하철 중앙동역이 나온다. 역에 들어가니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냉방장치를 가동하지 않아 무척 더웠다. 바람 한 점 없는 지하역에서 그냥 땀을 흘리는 수 밖에 없다. 다행히 조금 기다리니 열차가 와서 타니 천국이 따로 없다.
40분 쯤 걸려 지하철 1호선의 종점인 노포동역에 도착했는데 부산종합버스터미널 건물과 이어져 있다.

건물 안의 식당에서 우동으로 간단한 식사를 했다. 그리고 터미널 밖을 어슬렁거리다가 포장마차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기도 했다.





05시-부산 내항으로 진입하며





영도일까...





구름이 짙지만 차츰 밝아지고 있다.





멀리 용두산공원의 부산탑도 보이고





멀리 보이는 다리(부산대교?)를 2005년 가을에 건너본 적이 있다. 다리의 왼편이 영도인 것 같다.





터미널에 접안 중





부두 조명등의 따뜻한 빛이 좋아서-설봉호에서 마지막 한 컷





지하철 중앙동역에서 40분 걸린 종합버스터미널





이른 시간 냉방장치를 가동하지 않아 대합실은 찜통이었다.





이런 사진 찍는 게 그렇게 마음에 걸릴까.



4. 동해안을 달리며

9시 18분, 삼척까지 가는 무정차 버스가 출발했다. 가면서 사진촬영을 하려고 맨 앞 자리에 앉았다. 바로 곁의 운전기사에게 셔터소리에 대한 양해를 구했더니 전혀 문제없으니 마음대로 사진 찍으라고 한다.
과하지 않게 적정히 냉방장치를 가동하는 쾌적한 버스는 북으로 북으로 거침없이 달린다.
스치는 풍경들이 아름답다.
녹색들판은 눈까지 편하게 했다.
이정표에 나타나는 이름들도 정겹다. 울산 언양 건천 경주 대구 포항....

일부구간은 아직 공사중이지만 동해안 고속도로는 3년 전 갔을 때에 비해 거의 다 완료된 상태다. 버스는 시속 120Km 내외의 속도를 내며 달리는데도 노면이 좋아서인지 조용하다. 차 소리보다 내 카메라의 셔터소리가 더 크다.

울진 죽변을 지나면서 그리운 이름들이 마구 달려온다. 내게 ‘마누라를 사랑합시다’를 쓰게 했던 ‘물 반 고기 반’의 임원, 삼척화력의 자매마을이었던 초곡, 내 낚시 포인트가 있는 장호, 한국의 나폴리 용화 그리고 친구 수형이의 고향인 근덕을 지나고 한재(한치고개)를 단숨에 넘어버린다.

근덕과 한재 사이의 길고 긴 백사장과 송림이 끝없이 이어진 맹방해수욕장은 여전히 아름답다.
힘들게 살던 때 초당저수지 공사현장에서 하룻밤을 자고 났더니 밤새 폭설이 내렸다. 동해안 국도인 신작로를 비롯한 모든 길이 막혀 혼자서 눈속을 헤치며 삼척까지 걸어온 적이 있었다. 하늘은 검푸르고 햇살은 눈부신 날인데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아무 것도 움직이는 게 보이지 않는 눈속을 걷고 또 걸었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아 돌아보면 아무도 없고 또 그런 소리가 들려 돌아보면 그냥 펼쳐진 하얀 세상, 계속되는 환청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모른다. 해변 까마득한 단애 위의 한재를 넘는데 단애 아래의 거친 파도소리는 그대로 비명이었다.
거의 탈진한 상태로 한재를 넘어 오분리로 내려갈 때 멀리서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제설작업을 하는 모습에 얼마나 반가웠했는지.
아침 일찍 초당을 출발해서 저녁 무렵 한재를 넘을 때까지 사람 하나 발자국 하나도 보지 못했고 개짓는 소리조차 듣지를 못했다. 그 하얀 세상의 무서움이 지금도 선명하다.

동양시멘트 공장과 정라진을 연결하는 오십천 위의 ‘곰지교’를 건넜다.
‘곰지교’- 지금도 이 다리의 진짜 이름을 모르고 있다. 이 다리가 생기기 전 유지리와 정라진을 오가려면 와이어로프에 연결된 강배를 타야했다. 먹을 것조차 없어 굶기를 밥 먹듯 하던 때 돈을 내고 강배를 탄다는 건 호사에 가까워 멀고 먼 황산 앞 철교까지 돌아다니곤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강배가 있던 조금 아래에 다리를 만드는 공사가 시작되었다. 파일을 박고 교각을 세우고 상판이 연결되는 걸 보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난 이 다리를 ‘곰지교-곰의 다리’라고 불렀다. 분명 무슨 사연이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다리가 다 만들어지고 다리 입구엔 명패를 붙였는데도 그 명패를 읽어보지도 않았고 45년이나 지난 지금도 난 이 다리를 곰지교로만 부른다.

발전소 사택이 있던 유지리 도로로 들어서자 현수막이 빼곡하게 걸려있다. 살아오면서 같은 내용의 이렇게 많은 현수막은 처음 본다.
내가 삼척에 오는 걸 환영하는 현수막이 아니라 LNG 생산기지를 유치하게 된 걸 환영하고 내친김에 LNG를 이용한 종합발전단지 유치를 기원하는 내용이었다. 원자력발전소와 핵폐기물 저장소 유치를 결사적으로 반대해서 무산 시키던 삼척 사람들이 이젠 생각이 달라진 걸까. 아니면 LNG는 상대적으로 안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여하튼 삼척 전체가 현수막으로 뒤덮여 있다.

13:45분, 어제 17시 제주의 뜨란채를 떠난지 20시간 45분만에 삼척종합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울산 살 때 건천 오봉산에 간 적이 있다.





경주





울진이 지금은 경북이지만 예전엔 강원도에 속해 있었다.





싱그러운 녹색들판-





영덕의 상징 대게-정말 잘도 만들었다~!!





강구를 지나며





마침내 강원도-'물 반 고기 반'의 임원





아름다운 해변 마을





13:45분 삼척 도착



5. 어머니

1915년 생, 내일이면 만 93세가 되시는 어머니는 여전하셨다.
"훈이 애비가~!!"
뼈만 앙상한 손으로 반가이 내 손을 잡으신다.
"예, 어머니...."

절을 올리는데 그냥 눈물이 난다. 내게 아직 이런 어머니가 계시다니...
연세 많으시지만 결코 노쇠하시지 않다. 그저 목숨만 붙어있는 삶이 아니라 늘 집안 어른으로서의 품위를 갖추시고 귀도 밝고 하시는 말씀도 조리 있고 논리적이시다. 조금도 어눌하지 않은 쨍쨍한 목소리도 반짝이는 눈의 총기도 여전하시다. 어머니의 이런 건강은 바로 우리 형제들의 크나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큰 형님과 갈람으로 달렸다. 아까 삼척으로 오면서 본 해변풍경을 제대로 다시 촬영하고 싶어서다.
예전엔 까마득히 먼 곳들이 지금은 왕복 4차선의 미끈한 직선도로 덕분에 바로 옆동네 가는 정도 밖에 안 된다.
갈람으로 가는 도중에도 용화 바다를 촬영하고 갈람에서 촬영을 한 후엔 다시 옛 도로를 따라 장호 초곡 근덕 맹방 등을 거치면서 사진을 찍었다.

삼척으로 돌아와서는 수십 년간 어머니가 다니셨던 삼척성당(성내동 성당)을 찾아 여기저기를 카메라에 담았다. 아버지 돌아가신 후 홀로 40년 넘게 우리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며 이 성당을 다니신 어머니 생각에 목이 메었다.





용화 바다-멀리 장호가 보인다.





한적한 해변





갈람-수형이 화용이 등 친구들 가족과 이군 훈이 준이와 함께 저 섬에 간 적이 있다.





장호-내 '전용낚싯터'가 있었지...





수형이 고향인 근덕-도로의 안쪽에 이렇게 큰 느티나무가 있다.





맹방 들판엔 이미 벼가 팼다.





한재에서 본 맹방해수욕장-오른편에 신설된 고가도로가 보인다.





오분리는 별로 변한 게 없었다.





성내동 성당 입구





성모상





삼척시내를 내려다 보는 예수님





삼척시내-멀리 코끼리산이라 부르는 봉황산이 보인다.





성당 본관





죽서루 '대문'





죽서루 관동제일경 현판이 보인다.





죽서루에서 내려다 본 오십천





오십천 건너에서 본 죽서루





어머니와 큰 형님이 살고 있는 남양동 인화타운아파트 전경



6. 8월 10일-광진과 후진, 그리고 작은 후진

삼척에 가면 늘 어머니 곁에서 잔다. 잠이 일찍 깨서 어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길 하고 있는데 큰 형님이 와서는 일출 보러 안 갈래...? 하신다.
어디로...? 추암일출이 유명하지만 거긴 복잡할테니 한적한 정라진에서 광진을 거쳐 후진까지 연결되는 해안도로를 타기로 했다.
이 도로와 해변공원엔 ‘새천년...’이라는 이름이 있는데 난 이 이름들이 영 맘에 들지 않아 쓰지 않는다.

정라진은 이미 아침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쁘게 움직이고 어선은 ‘통통통통....’ 바다를 향해 헤엄치고 있다. 엊저녁에 쳐 둔 그물을 걷으러 가는 모양이다.
지금은 횟집이 즐비하게 늘어선 예전의 물양장은 사람도 별로 없고 아직 어둑했다. 그 옛날 힘들게 살던 시절 찹쌀떡 약밥 빵 등을 팔며 캄캄한 밤의 항구를 돌던 때 묵호에서 온 같은 ‘업종’의 서넛 아이들한테 ‘나와바리’ 다툼으로 일방적으로 몰매를 맞아 피투성이가 되기도 했던 내 아픈 추억이 스며 있는 곳이다.

옛날 막장이라고 부르던 항구의 북쪽 해안은 말 그대로 천지가 개벽되었다. 해안을 다니도록 만든 길이라는 게 원래 없었고 낚싯대를 들고 묘기를 하듯 바위와 바위 사이를 건너뛰고 또 큰 바위를 암벽등반 하듯이 넘으며 광진이나 감나리까지 낚시를 다니기도 했는데 지금은 멋진 포장도로가 후진까지 이어졌고 조각공원과 야외공연장이 들어섰다.
아침 운동을 하는 듯 한 떼의 여자들이 멋진 헬멧과 몸에 붙는 옷을 입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간다. 옛날의 막장에서 보는 이런 풍경이 너무나 생소하고 그간의 세월의 흐름을 실감나게 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른데 수평선 멀리엔 낮은 구름이 띠를 이은 듯 내려앉아 있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해가 떠도 수평선의 구름 위로 올라야 볼 수 있을 것 같다.

일출을 형상화한 공원의 바다 쪽에 삼각대를 세우고 바다를 내려다보니 바로 눈 아래 고래바위가 보인다. K광진에 가기 전의 위치다. 그리고 삼각대를 세운 곳은 옛날 군부대의 해안 경계초소가 있던 바로 그곳이다. 보초는 나를 쫓아내려고 하고 나는 물러서지 않고 버티며 낚시를 하던 ‘유서 깊은’ 곳이다.
낚시를 다녀와서 경계병의 ‘여버셔어(여보세요)~~ 버처(보초)는 펌(폼)으로 있는 줄 아셔~~ ’하는 말을 흉내내며 얼마나 웃었는지.

보초가 호르라기를 불거나 소리를 지를 때 절대 돌아보면 안 된다. 그냥 못 듣는 척하고 있어야지 한 번 쳐다보고 나면 안면 받쳐서 안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몇 번은 할 수 없이 쫓겨나기도 했다. 그런데 못 들은 척 하고 있으면 낚시하는 곳까지는 길도 없고 절벽을 내려오기가 무척 힘들다는 걸 알고 난 후부터는 절대 물러나지 않고 낚시를 했다. 시끄러워도 조금 있으면 소리 지르던 보초도 지쳐서 조용해졌다.

주위가 더 밝아지면서 해가 떠 올랐다.
일출풍경도 찍고 붉게 물든 공원의 조형물도 카메라에 담았다.
조각공원에서 광진과 감나리는 차로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을 것 같았다.

작은후진에 갔다.
주먹만한 홍합이 다닥다닥 붙은 섭바위가 있고 직접 만든 수경을 쓰고 작살로 놀래기를 잡던 곳, 모래 위를 걸으면 ‘뽀각뽀각’ 소리가 나던 한적한 곳은 이제 전형적인 ‘해수욕장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로 곁의 후진까지 가서 몇 컷을 촬영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낮시간은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시장에 가서 진짜 맛있는 강원도 찰옥수수를 사다 먹기도 했다. 그리고 저녁엔 형제들 모두와 옥상에 올라가서 불고기파티를 하며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지난 해 12월 촬영한 삼척 정라진의 옛 물양장





달맞이꽃 너머로 보이는 섬이 내 낚싯터인 고래바위다.





동해의 일출





일출 상징물-건립을 위해 성금한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혀 있다.







조각공원의 바이얼린 키는 조각물





작은 후진의 아침-내 고향 같은 곳





따사로운 햇살을 받고 있는 해변







작은 후진을 넘어서면 바로 큰 후진 삼척해수욕장이다.





현수막에 덮인 삼척





어머니가 어딜 가신다길래 뒤를 따라갔다. 어딜 가실까....





시장에서 정품 강원도 찰옥수수를 사오시는 중



7. 8월 11일-어머니 생신날

1915년 생인 어머니가 아흔 세 번째 생신을 맞이하셨다.
호박과 쌀로 만들었다는 큼직한 생일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둘째 동생 혜린이 애비는 색소폰으로 축가를 연주했다.
어머니의 아들 며느리 손주 등 모두가 오래 오래 건강하시라고 축하를 드렸다.
막내를 학교 졸업만 시키고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그 막내가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아 그 자식들이 대학을 졸업했으니 어머니 소원이 200% 이루어진 것일까.

어머니 생신 때 모두들 바다나 강으로 가는데 이번엔 피곤하다시며 안 가겠다 하셔서 나도 ‘내무감시’로 집에 남았다. 그리고 점심 때는 어머니도 나도 좋아하는 막국수집에 가서 수육과 함께 막국수를 먹고 왔다.

평전에 있는 막국수집에 오가며 어머니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우리 나이로 이제 94세 제주에 살면서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어머니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을까. 아파트 4층의 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리시는 어머니 뒷모습을 보며 언젠가는 저렇게 혼자 가시겠지 하는 마음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둘째 동생 혜린이 애비가 색소폰으로 축가를 불렀다.





"어머니 촛불 끄세요."





"와 안 꺼지노...?"
"호~ 하고 불어보세요~"





"이제야 꺼지네 ^^*~"





3.1 독립운동과 일제에서의 해방과 6.25전쟁과 4.19와 5.16을 거쳐오신 어머니-.





외출은 즐거워-어머니와 부일식당에 막국수 먹으로 갔다.







지팡이 같은 거 없어도 4층 계단을 잘도 오르내리신다.







우리 7형제 키우시며 험한 세상 사셨어도 허리 하나 굽지 않고 당당하시다.
(어머니, 참 근사해요~!!)





부일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버스를 기다리며-





무슨 생각을 하실까





저 많은 계단처럼 힘드셨을 세월





언젠가는 저렇게 혼자 가시겠지....



8. 8월 12일-삼척에서 제주로

아침 7시 40분에 삼척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탔다. 무정차가 아니어서 버스는 좋은 4차선 길을 마다하고 좁고 구불구불한 옛 길을 따라 동네방네를 방문했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그래도 그렇게 버스를 타보는 게 좋아서 지루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강원도 삼척에서 혼자 탄 버스는 경북 울진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도 더 타지 않아 ‘28인승 리무진버스’를 자가용 삼아 큼직한 좌석에 혼자 앉아 왔다.
예전 같으면 이러진 않을 것 같았다.
이제 대부분 자가용 승용차를 타고 나들이를 하니 이런 완행버스엔 타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버스 운전기사의 배려로 울진에서 무정차 버스로 갈아타고는 남으로 달렸다.
그리고 밤배를 타려던 원래의 계획을 바꿔 '비효율적으로' 비행기를 탔다.
만남의 기쁨과 아쉬움을 뒤로 하며...





삼척화력 효율과에서 함께 근무했던 박인자 씨의 고향인 임원을 지나며





죽변-정류소 간판이 너무나 정겹고 근사해서 얼른 촬영했다.





"기다림"-평해에서





영덕-오래 전에 이군과 버스여행을 할 때 여기서 게를 사다가 버스를 타고 가면서 먹었다.





이제 포항에 들어섰다.





"태광그룹 흥국생명 포항터미널...?"
간판만 보고는 여기가 버스정류장이라는 걸 어떻게 알까.
마치 태광그룹 흥국생명의 전용 터미널 같다.





포항을 떠나 다시 달린다. 여긴 어디일까.





공항을 이륙할 때 이미 해가 졌다.





어두워지는 산하





그러나 '하늘'엔 아직 해가 마지막 빛을 내고 있었다.





붉은 빛은 구름층 위로 퍼지고









어느 남해안의 상공에서





마지막 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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