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몽골 패상-초원에 부는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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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몽골 패상-초원에 부는 바람


가을바람을 탄다
리칭의 ‘스잔나’가 애절하게 들리는 계절이면 병명도 모르고 치료약도 없는 병에 걸리게 되고 마치 약 먹은 병아리처럼 심신이 시들해지곤 한다. 이럴 때는 집을 떠나 어디라도 다녀오면 병세가 나아진다는 걸 체험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을이 되면 하다못해 가까운 우도라도 가서 파도소리 들으며 하룻밤 별을 보고 와야 되기도 했다.

병도 이런 병이 없다. 지금 내 나이가 몇인가. 이제 낼 모레면 일흔이다, 일흔. 이 나이에 가을병을 앓고 감상에 젖어 얼라처럼 집을 나서야 한다니 어쩌면 좋은가.
어쩌긴 뭘 어째, 여행을 하면 되지.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는 데서 자작나무라는 우리말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8월 며칠이든가, 내가 가끔 사진을 올리는 인디카의 자유게시판에 노을향기 님의 내몽골 초원에 자작나무 보러가자는 글이 올라왔다.
자작나무 보러 가자고? 하얀 몸통의 자작나무를 보러 내몽골에 가자고...?

가을철 노랗게 잎이 물든 하얀 몸통의 자작나무-
몸통에 산 같은 무늬가 선명한 아름다운 자작나무를 아주 오래 전부터 카메라에 담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자작나무 군락지를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선뜻 생기지 않아 지금껏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아주 아주 오래 전에 어느 분이 나보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자고 했다. 시베리아엔 엄청난 자작나무 숲이 있는데 거기 내려서 마음대로 사진을 찍도록 해줄테니 카메라와 필름만 가지고 가면 된다는 제의를 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현직에 있을 때여서 그렇게 시간을 낼 수도 없었고 또 그때까지 난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한 적도 없어서 꾸물거리다가 사양하고 말았다.

2009년 7월에 백두산에 갔을 때 정상까지 차로 오르며 수목한계선 부근에서 키는 좀 작지만 몸통이 하얀 나무들을 보고 자작나무인가 했는데 그건 사스래나무라고 했다. 하산하면서 휴식시간에 가까이에서 보니 자작나무와는 몸통이 달랐다. 이게 자작나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아쉬움이 컸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이젠 자작나무를 향한 내 짝사랑도 시들해질 때가 되었는데 난데없이 자작나무 만나러 가자는 공지에, 그것도 가장 아름다운 가을의 자작나무를 보러 가자는 공지에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신청했다. 일정이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오랜 세월 보고 싶던 자작나무도 보고 금년엔 내가 가을병도 걸리지 않아 우리 가정에 평화가 깃든다면 얼마나 좋은 일인가. 참가를 신청하고는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샌프란시스코엔선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를 볼륨 높여 틀었다.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Be sure to wear some flowers in your hair
If you're going to San Francisco
You're gonna meet some gentle people there
For those who come to San Francisco
Summertime will be a love-in there
...........

자작나무를 숲속의 여왕이라고도 한단다. 그만큼 기품이 있는 나무여서 그럴 것이다.
거기에 꽃말처럼 ‘당신을 기다립니다’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자작나무, 그래 조금만 더 지둘려~, 나 곧 갈게~~!!

어릴 때 엉덩이에 있던 푸른 반점, 그 푸른반점의 고향인 몽골을 찾아 이 멋진 가을 촬영배낭 짊어지고 집을 나서자. 가서, 숲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긴 머리 짧은 치마의 하얀 여인을 만나자. 기품 넘치는 하얀 여인을.


이제 내몽골의 초원 패상으로 간다
준비의 마지막으로 카메라 센서를 AS 센터에 가서 말끔히 청소하고 핸드폰도 불필요한 요금 나오지 않게 114에 전화해서 자동 데이터로밍을 차단해 놨다. 이제 모든 준비가 끝났다.

출발을 하루 앞 둔 밤에 노을 님한테서 문자가 왔다. ‘출사준비 잘 했느냐, 현지 날씨는 밤 기온 0도 낮 기온 15도 정도, 베이징은 서울과 비슷하다, 그러나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기도 하니 옷 준비 잘 해라, 여권 다시 확인해라, 하루 정도 비 예보가 있는데 다음 날 운해나 안개를 볼 수도 있겠다’ 등등이다. 오늘 제주의 기온은 최저 18도 최고 25도였는데 0도에서 15도라면 제주의 겨울날씨와 비슷하다. 겨울 한라산에서 입던 다운파카를 챙겼으니 옷 걱정은 없다. 0도까지 떨어진다면 잘 하면 몽골의 설원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비까지 오면서 언다면 상고대 아닌 빙고대까지 만날 수도 있겠다. 야호~~!! 비 좀 오고 기온도 좀 많이 떨어져라 ~~

지난 몇 년간 히말라야에 반해서 심신의 마지막 남은 힘까지 쏟아 부어야 했던 그런 죽기 살기 식 전투가 아닌 평안한 마음으로 몽골의 패상으로 가자. 초원을 스치는 바람을 찍고, 끝 간 데 없는 지평선도 찍고, 칭기스칸을 비췄을 눈부신 태양도 찍자. 해가 지면 초원에 누워 하늘을 보자. 동서로 가로지르며 하얗게 떠있는 은하수도 보고 북두칠성도 보고 카시오페아도 만나자. 두 눈 크게 떠서 내 연인보다 아름다운 안드로메다가 보이면 지구 소년 철이와 함께 은하철도 999를 타고 거기까지 가보기도 하자.

내가 언제까지 이런 글을 쓰고 카메라를 챙겨 길을 떠날 수 있을 것인가. 지금 떠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몽골의 바람도, 하얀 자작나무도, 태양도, 은하수도 만날 수가 없다. 아무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아무도.


인천으로
제주에 살면 다 좋은데 한 가지 불편한 게 이렇게 해외로 나갈 때다. 그것도 넉넉한 시간에 가고 오면 괜찮은데 이번처럼 오전 8시 20분에 출발하고 여행한 후 밤 10시 10분에 도착하게 되면 꼼짝없이 인천에서 이틀 밤을 자야 한다.

12:30분 임프로가 와서는 나와 이군과 내 짐을 공항까지 실어다줬다. 내 짐이 세 개다. 벨트팩과 배낭과 큼직한 캐리어. 자칫하면 짐 하나 잃어버릴 지도 몰라 정신을 똑바로 차렸다. 벨트팩에 넣은 카메라를 잃어버리면 큰일이다. 몽골의 패상 초원에서 긴 머리 짧은 치마의 하얀 여인을 만나도 카메라가 없어 사진 한 장 못 찍는다면 큰 낭패다.

김포공항에 도착, 이군과 공항식당에서 식사를 한 후 이군은 6014버스를 타고 광명 해원이한테 가고 난 인천공항행 리무진을 타면서 헤어졌다. 지난 해 랑탕에 갈 땐 인천까지 동행해서는 거기서 광명으로 가더니 해원이가 태어나서는 내게 대한 관심이 줄었나 보다. 할 수 없다. 난 우리 집 서열의 마지막 번호 8번이다. 공항 3층 5번에서 게스트하우스 엘비스 비앤비(Elvis B&B)로 전화를 했더니 잠시 후 주인인 김정형 사장이 직접 차를 몰고 와서는 게스트하우스로 태워갔다. 엘비스 비앤비는 한적한 곳에 있는데 마치 전원주택 같다. 2층에 안내되어 짐을 풀었다. 주인 내외가 집의 여기저기를 소개했다. 냉장고엔 식빵과 계란 딸기쨈 등이 있으니 마음대로 먹으라 하고 커피를 비롯한 여러 가지 차도 있어서 하룻밤 묵어가기엔 조금도 불편함이 없어 보인다. 꽤 변두리지만 길이 좋아 공항에서 불과 10분 정도다. 전화 010-9424-1019

카메라를 들고 해변까지 산책을 했다. 제주와 달리 여긴 벌써 가을이 가까이 와 있다. 공원의 나뭇잎이 빨갛고 노랗게 물든 것도 보인다. 날씨가 좋아 해변에서 보는 일몰은 보기 좋은 풍경을 만들었다.
제주에서 이군이 만들어 준 샌드위치로 저녁식사를 하고는 음악을 듣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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