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여행
sun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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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행을 기다리며]    [1일차/2월 16일-서울에서 일본으로]    [2일차/2월 17일-아사쿠사와 토쿄 크루즈]    

[3일차/2월 18일-시부야 거리와 요코하마]     [4일차/2월 19일-시장과 긴자 거리]     [5일차/2월 20일-다시 제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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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행을 기다리며

2011년 1월 4일-일본 초청
일본에 사는 큰 녀석 훈이에게서 메일이 왔다. 2월, 엄마 회갑 때 일본으로 모시고 싶습니다 한다. 얼마 전 여권 갱신하면 사진 찍어 보내달라고 하길래 일본 언제 갈지도 모르는데 녀석이 왜 서두르나 했었는데 그런 꿍꿍이를 하고 있었나 보다. 그래 어차피 자식 며느리 사는 데 한 번은 가 보고 싶다 했었는데 이군 회갑 때 맞춰서 간다면 아주 잘 된 일이겠다. 회갑 때 큰 아들 내외 덕분에 일본여행을 했다고 이군 자랑거리도 될 것이고.
살다보니 마누라 덕분에 일본 구경을 하게 되는구나 싶다.
그래서 모름지기 장가를 잘 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몇 달 전부터 이군의 모든 사진을 모으고 정리해서 슬라이드쇼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결혼 6개월 전인 1973년 11월 삼척 죽서루 출렁다리에서 사진사가 찍어 준 흑백사진이 이군과 함께 찍은 최초의 사진이다. 그 사진부터 지난 해 가을까지 찍은 모든 사진을 모으고 선별한 후 보기 좋은 사진으로 만들었는데 오늘에야 초본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5일 정도면 이 작업도 끝날 것 같다.

사진에서처럼 22살 둥그스럼한 얼굴의 이군이 이제 60살 회갑을 한 달 남겨두고 있다. 아내와 엄마이기 전에 한 여자로서, 나이 60이 되는 여자로서 평소 쉽게 감상에 빠지지 않는 이군이지만 왜 허전한 마음이 없을까.
직장 다니며 돈 벌 때 이군 생일에 한 번도 제대로 마음 써 주지 못한 게 참으로 후회스럽다.
그래도 이제 자식 며느리가 엄마 회갑에 이렇게 마음을 써 주니 고마운 마음이다.


2011년 1월 8일-최종결재
이군과 새벽산책을 하면서 훈이 이야길 했더니 어째 선뜻 대답이 없다. 돈 걱정하지 말라는데 한 번 다녀오자고 했더니 누가 쓰든 돈이 많이 들잖아요 한다...
훈이 일본 갈 때 수중에 있는 돈 다 털어 우리 집 살림살이를 새로 사고 바꾸고 당신 핸드폰까지 글짜 큼직한 좋은 것으로 사주고 갔는데 물가 비싼 일본에 살면서 무슨 돈이 있겠어요, 더구나 큰 애기까지 직장 다니면서 살려고 그렇게 애 쓰고 있는데 아무리 자식이래도 너무 부담스러워요 하더니 그냥 그날 지난 가을 뭔 행사 때 갔던 중문 길가에 있는 식당에 가서 점심으로 먹었던 고등어구이나 사 줘요 한다.
일본여행이 순식간에 고등어구이로 변해 버렸다...
거기에 더하여 난 자식 며느리에게 염치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고.

그래도 어쩌랴, 평양감사도 제 싫으면 못하는 것을.
그날 회갑인 이군의 마음이 편해야 그게 좋은 거라며 그럼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리고 훈이에게 다시 메일을 썼다. 너희들 고마운 마음만 받기로 하고 일본엔 다음에 갈테니 그리 알아라.

며칠 후 훈이 녀석 그동안 출장 다녀왔다면서, 그리고 민정이까지 합세해서 이군에게 직접 전화를 했다. 우리 부부의 일본여행도 내가 아니라 이군의 '결재'가 나야 간다는 걸 녀석들이 눈치 챘나보다. 내가 가자고 할 땐 한 마디로 안 간다고 한 여자가 자식과 며느리의 전화엔 두 말 없이 간다고 오케이다.
훈이 녀석 내게 전화를 바꾸더니 '오실 거죠?'한다. 아니, 내가 못 간다고 보낸 메일을 읽고도 엄마가 오케이 하니까 가는 걸로 그냥 결정을 내 버린다. 오냐, 그래 난 이제 우리 집의 최종결재권자가 아니다.


2011년 1월 17일-여권
열흘 전 거실에서 여권용 사진을 찍었다. 나도 이군도 5년 전에 만든 여권의 시효가 지나 새로 만들어야 한다. 거실의 슬라이드쇼용 스크린을 내리고 이군은 내가 찍어주고 난 이군이 찍어줬다. 사진 찍는다고 이마트에서 15,000원 주고 산 티셔츠를 입은 이군은 화색이 좋은데 난 어째 곗돈 떼인 사람 표정이다. 바이킹이 설치는 옛날도 아니고 첨단 과학이 하늘을 찌르는 지금 난데없이 해적이 날뛰는 세상이 하 수상하니 고민이 많아서 그런가 보다.

그렇게 사진 찍고 도청에 가서 신청한 여권이 며칠 후에 나왔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장관 도장이 찍힌 여권을 찾아 사진촬영해서 일본의 큰 며느리 민정이에게 메일로 보냈더니 예약한 아시아나의 이티켓이 득달같이 메일로 왔다. 2월 16일 김포에서 하네다로 갔다가 5일 후 돌아오는 것이다. 인천에서 가는 게 아니어서 디기 억시기 정말로 참 좋다. 난 길 잃을 것 같은 인천공항이 싫다.

이군은 일본은 안 비싼 게 없다는데 너희들 우리 간다고 돈 쓸 생각 마라, 밥은 외식하지 않고 집에서 먹을 거다, 관광지 같은 데 안 갈 거고 가까운 시장 같은 데 구경할 것이니 그리 알아라 하며 미리부터 다짐을 한다. 우리 다녀온 후 아이들 깡통 찰까봐 걱정이 되나 보다.

나도 그렇다. 중국이나 호주에 갔을 때도 유명 관광지보다 시장 구경도 하고 뒷골목이나 밤 거리 쏘다니며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싶었지만 밖에 혼자 나다니면 큰일 난다는 가이드의 엄포에 꼼짝없이 호텔에 갇혀있는 게 늘 불만이었는데 이번에 가면 꼭 그렇게 내 맘대로 나다니고 싶다.
유명 관광지는 구태어 일본까지 직접 가서 볼 필요도 없다. 세계 최고속도의 대한민국 인터넷이 24시간 연중무휴로 연결되어 있는 내 책상 위의 모니터를 열면 전 세계의 관광지가 수도 없이 나온다. 평생 봐도 다 못 본다.


2011년 2월 9일-이군 회갑
37년을 나와 함께 살아온 이군의 회갑-
평소와 다름없는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 때는 약속대로 중문 천제연폭포 부근 길가의 작은 식당에 가서 고등어구이로 점심을 먹었다. 그리고는 함께 중문 해변을 걸었다.
여자 나이 50이면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으니 밖에 내놔도 괜찮다고 하는데 거기서도 다시 10년이 지난 이군은 회갑을 맞으며 어떤 마음일까.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여자로서.
벌써 이렇게 나이를 먹은 이군을 보며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이다.

나이 예순인 지금도 자주 따뜻한 물 대야에 담아 내 발을 씻겨주는 이군-
아무리 힘들어도 철 따라 나는 과일 중 가장 크고 잘 익은 걸 사다 주는 착한 아내-
그녀가 절대 비싼 한우 아니고 수입산이라면서 사다 구워주는 고기가 한우라는 걸 난 진작부터 알고 있다.

남은 세월 부디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늘 내 곁에 있어주길 바라는 마음-.

내가 혼자 들기도 힘들 정도로 큰 화분에 멋진 행복나무를 담은 화분을 민기 엄마가 보내왔다. 지난 해 하동으로 이사를 갔으면서도 이군 생일을 잊지 않고 이렇게 마음을 보내와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고맙다. 지난 15년 동안 한 번도 잊지 않고 이군 생일 날 크고 작은 선물을 보내주는 이웃이 어떻게 서로 소식도 없이 사는 사촌과 같을까 싶다.

자식과 며느리는 곁에 없지만 삼척 여수 인천 서울에 사는 형제들이 이군에게 축하전화와 축의금을 보내왔다. 여자 생일 날 밥이나 고봉으로 담아주면 된다고 했는데.... 고마운 내 형제들.


2011년 2월 15일-삼각대
이제 D-1이다. 내일 김포공항에서 15:50분 비행기로 하네다로 가는데 우린 일찌감치 제주에서 08:10분 비행기로 출발한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이군을 공항에 남겨두고 난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서 좀 떨어진 촬영장비 파는 델 가서 삼각대와 필터 두 개를 사가지고 오기로 했다.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삼각대는 반드시 눈으로 보고 확인해야 했기 때문이다. 모두 세 시간이 필요한데 그 동안 이군 혼자 공항에 있게 할 일이 영 미안하고 찜찜했다. 그러나 어쩌랴, 삼각대 하나 사러 다음에 제주에서 다시 비행기 타고 서울에 다녀 올 수는 없지 않는가. 더구나 내가 찜한 삼각대가 실제 마음에 들지 안 들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어젯밤 이런 이야길 서울의 친구에게 말했더니 ‘야, 그러지 말고 일본에 가서 사면 되잖아~!’한다. 엉~ 정말 그렇구나, 일본에 가서 많은 것 중에서 고르면 더 마음에 드는 걸 살 수도 있고 값도 쌀텐데....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

점심 때 훈이 준이 녀석에게 전화로 삼각대 이야길 했더니 둘 다 일본이 더 비싸다면서 서울에서 사라고 한다. 그리고 준이는 내가 가려는 촬영장비 판매회사가 자기 거래처여서 싸게 사드릴 테니 내일 고생하지 말고 엄마하고 자기 집에 와 계시면 퀵서비스로 삼각대와 필터 두 개를 가지고 갈 것이니 그리 아세요 한다. 삼각대 받아보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되돌려주면 된다고 하면서.
잠시 후 훈이 한테서도 전화가 왔다. 내가 말한 삼각대 등의 가격을 일본에서 알아본 결과 ‘당연히’ 더 비싸다며 하나하나 가격을 알려준다. 참 내, 이런 아들 없는 사람들은 사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삼각대가 뭐 얼마나 중요하다고 모처럼 부부동반해서 여행하는 첫날부터 그렇게 일을 복잡하게 하는 걸까. 내 사진에 있어 삼각대는 ‘생명과 같다’다. 국회의사당 출입문을 때려부수고 의장석 점거를 하려고 하는 패들과 이를 막으려고 힘자랑 하는 패들의 일진일퇴를 담는 ‘전쟁사진’이 아니라 수천 년 수만 년을 가만히 있는 산을 찍으면서도, 더구나 81미리 박격포 같은 대포렌즈가 아니라 조막만한 광각렌즈를 쓰면서도 난 삼각대를 사용해 사진을 찍었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 것이다.
그렇게 삼각대를 사용하다보니 당연히 집에 삼각대가 여러 개가 있다. 옛날 하프카메라에 쓰던 안테나식 삼각대부터 617파노라마에 쓰던 무게가 3kg 쯤 하는 것까지 여러 개가 있다.

삼각대는 무조건 크고 무거울수록 흔들림이 없어 선명한 사진에 좋다. 토목공사 측량이 쓰는 큼직한 삼각대거나 방송국의 촬영용 삼각대면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기에도 정도가 있다. 더구나 반드시 반사경을 올린 후 케이블 릴리즈로 셔터를 끊는 나로서는 무작정 크고 무거운 삼각대를 사용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늘 타협을 한다. 어디로 촬영하러 갈 것인지 어떤 카메라로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지에 따라 가장 큰 삼각대를 쓰기도 하고 다리 하나가 한 뼘밖에 안 되는 접사용 삼각대를 쓰기도 한다.

이번에 사려고 하는 삼각대는 조건이 좀 복잡하다. 촬영대상이 내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볍고 그러면서도 탄탄하고 다리의 마디마디를 잠그는 장치가 나사식이 아니라 클램프식이어야 한다. 그리고 크기도 ‘적당’ 해야 한다. 이런 조건의 삼각대를 구하려고 한 달도 넘게 인터넷을 헤메고 다니다가 결국 열흘 전에야 찾아냈는데 센터컬럼이 좀 짧다는 것 외엔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실물을 봐야하고 실물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어서 이렇게 고심도 하고 꾀를 내려고도 하는 것이다.

처음, 이군을 공항에서 기다리게 하려고 했더니 소영이가 공항에 나오려고 하길래 나오지 말라고 했다. 수현에 데리고 사람 많은 데 나왔다가 자칫 감기라도 들리면 큰일이다. 얼마나 힘들게 얻은 자식인가. 수현이 가지고 소영이는 평생 맞을 주사를 다 맞았다. 그것도 하루에 두 차례씩 스스로 몸에 주사바늘을 찌르면서.
대신 시간이 남는 우리가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으니 이군도 아주 아주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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