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화진포까지
sun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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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해변을 따라-







2005.10.16
여행을 앞두고 계획이랄 것도 없는 계획을 짰어요. 그저 차를 몰고 남해안과 동해안을 달리며 사진을 찍고 싶다는 것, 사진을 찍되 사진에 욕심을 부리진 않겠다는 것, 가능하면 화진포까지 가보고 싶다는 것이 전부예요. 그리고 정말 내가 직장에서 퇴임한 건 지 그리고 정말 마음대로 다니며 회사 안 나가도 되는 것인지 확인을 하려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라면 목적인 거예요. 출발은 화요일인 18일에 하려고 하는데 여행기간은 정하지도 못했어요. 퇴임 후에도 무리하달만큼 스캔작업에 매달렸지만 이번 여행엔 '무진장 시간이 많다'는 가정을 하고 떠나기로 했어요.

직장에서 오랜 기간 교대근무를 해오는 동안 자연히 시간에 대해 늘 쫓기는 마음이 몸에 배어 버렸어요. 술을 마셔도 산행을 하면서도 다음 근무 시간에 대해 생각을 하고 시계를 봐요. 부자도 아니면서 매년 연차휴가보상비 중 상당액을 돈으로 받지 않고 시간으로 사용하면서 시간에 대한 관념은 더욱 더 철저해질 수밖에 없었어요. 적치해 둔 연차휴가를 사용하는 중 계획대로 되지 않아 아까운 시간을 그냥 보낼 때의 안타까움, 이번 여행을 하면서 그 아까운 시간을 마음대로 낭비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출발시간을 정하면서도 돌아오는 날짜를 정하지 않은 것이에요. 그래, 다음 출근할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이름 모를 해변을 쏘다니고 아무 데서나 하루를 묵든 이틀을 묵든 내 마음대로 한 번 해보자. 그렇게 해도 아무 일이 없는지 확인을 해보자. 그래서 내가 정말 직장에서 퇴임을 했고 앞으로의 시간은 내 맘대로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내 스스로 확인을 해보자.

그런데 어제 오후부터 몸에 이상이 생겼어요. 몸살인지 한기가 느껴지고 몸에 열이 있어요. 그래도 짐을 꾸렸어요. 아프면 병원에 들어가면 되는 것이고 육지에도 제주도처럼 병원은 있겠지요.



10월 17일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주사도 맞았어요. 별 이상은 없고 푹 쉬는 게 좋겠다고 해요. 5일분 약도 준비했어요. 몸이 완전할 때 떠나는 게 좋겠지만 마음먹었을 때 떠나고 싶었어요. 제주항 여객터미널에 전화해서 내일 아침 완도행 배편에 차를 싣는다는 예약도 했어요. 연님의 사랑방과 내 홈 게시판에 여행한다는 글을 올렸어요.


가을 해변을 따라-
18일 오전 집을 떠납니다.
완도에서부터 남해안을 따라 부산까지, 다시 동해안을 따라 휴전선 가까이 화진포까지 가려고 합니다.
6일째 되는 날인 23일 화진포에 도착하려고 합니다만 그건 가봐야 알겠습니다. 화진포는커녕 남해의 어느 바닷가에 며칠간 죽치고 앉아 소주만 마시다 올 지도 모르고, 하루 종일 그리고 밤에도 계속 달려 하루 이틀만에 화진포에 갈지도 모릅니다.
여행할 때마다 미리 치밀한 계획 세웠었지만 이번엔 별 계획 없이 그냥 떠납니다.




10월 18일
밤새 잠을 설쳤어요. 잠을 푹 자는 게 좋겠지만 잠이 안 오니 어쩔 수가 없어요.
06:45 아파트를 출발했어요. 맑고 조용한 날씨, 제주도답지 않게 바람 한 점 없어요. 차의 운행적산계를 체크했어요. 37,882Km. 여행 중 얼마나 달렸는지 보려고요. 6부두에 정박해 있는 한일 카페리 2호 선창에 차를 실었어요. 92,800원. 그리고 출항 30분 전에 국제여객터미널을 통해 승선했어요. 운임이 18.000원인데 차주는 50% 할인이어서 9,000원이래요.

배는 08:20분 정각에 출항했어요. 휴가철이 아니어서인지 객실이 썰렁했어요. 배가 외항으로 나가자 바람이 강해졌어요. 수평선 위에 떠 있는 제주도의 모습을 촬영하고 싶었으나 연무로 인해 제주항의 모습조차 제대로 촬영할 수 없었어요.

몸이 으스스한데도 객실에 있지 않고 갑판에 나왔어요. 거의 40년만에 처음인 '무제한'의 시간을 갖고 떠나는 여행인데도 마음이 가라앉아 즐겁기보다는 가을빛처럼 쓸쓸하기조차 했어요. 왜 이럴까. 왜 이렇게 흥이 나지 않을까. 핸드폰이 울려 받아보니 울산화력의 최명수 과장이었어요. 그리고 잠시 후 역시 울산화력의 박진태 씨가 전화를 했어요. 모두 안부 전화였어요. 내가 여행 중이라고 하니 울산에 들러 얼굴이라도 좀 보자고 해요. 10:30분쯤 왼편으로 제법 큰 섬이 나타났어요. 완도가 가까워지나 봐요.

제주항을 출발한 지 3시간 반 만인 11시 50분에 하선했어요. 완도여객터미널에서 제주로 돌아가는 배편을 알아보고 '한국도로관광지도'를 한 부 구입했어요. 그리고는 터미널 건너편의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어요. 완도는 아주 청명하고 온화한 날씨였어요.

12:40분 완도를 출발해서는 13:40 해남, 14:05 강진, 14:25 장흥, 15:40 순천, 16:00 광양을 지나 고속도로에 올랐어요.
삼천포화력에 근무하는 김종활 씨가 전화를 했어요. 내가 남해 물건리에서 1박할 거라니까 시간을 내달라길래 이번 여행에선 가능한 한 아는 사람 안 만나겠다고 했어요. 16:25 남해 입구에서 고속도로를 내렸어요.
남해대교를 건너는데 저녁노을이 비친 바닷빛이 참 아름다웠어요. 한 컷 찍을까 하다가 사진 욕심 내지 말아야지 하고는 그냥 달렸어요. 동생 순식이 전화를 했어요. 김종활 씨가 연락을 한 게 분명하지요. 근사한 해상호텔을 구해 놓을테니 거기서 자라고 해요. 필요 없다고 했더니 그럼 혼자 사는 사택이니 저녁 먹고 거기서 함께 자자고 해요. 나 하고싶은 대로 그냥 놔두라고 했더니 이따 물건리로 찾아갈 테니까 그런 줄 알라고 해요. 동생이 찾아오겠다니 어쩌겠어요.

17:20 남해 물건리의 어부림에 도착했어요. 운행적산계는 38124Km, 오늘 242Km를 달린 거지요. 어부림은 이미 일부 단풍이 들기 시작했어요. 빛이 약했지만 서둘러 몇 컷 사진을 찍었어요. 해변에서 라면을 끓여먹고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커피도 한 잔 마시려 했으나 퇴근 후 찾아온 동생과 할 수 없이 어느 횟집을 찾아 식사를 했어요. 동생은 형이 몸도 안 좋은데 차안에서 자면 안 된다고 어부림 가까이 있는 숙박업소에 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만 그런 소리 말라고 하고는 돌려보냈어요.

제주에서 지어온 몸살 약을 먹고는 운전석을 뒤로 눕히고는 모포를 덮었어요. 달이 대낮 같이 밝았어요. 마을에 개 짖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는 말 그대로 적막강산이었어요.
23년 전 울산에 살 때 혼자 와 봤던 이곳, 5년 전 구제풍 씨와 다시 와 봤던 이곳, 그때 촬영한 사진을 연님의 수필방에 띄워놓고 돌님의 등대 이야기부터 목 선생님의 수병시절 이야기로 수필방을 따끈따끈하게 했던 일들이 그리웠어요. 나는 결국 마라도 등대의 무적 사진까지 올렸었지요. 목 선생님과 친구들이 몹시 그리웠어요. 목 선생님 같은 분을 어떻게 또 만날 수 있을까요.
밤 두 시, 잠이 오지 않아 룸라이트를 켜고 메모를 하면서 음악을 들었어요.




나를 완도까지 태워다 준 한일 카페리 2호




제주항 점경




제주항 서부두 등대




한일 카페리 점경










거의 비다시피한 객실




선미 부분




은파




완도가 가까워지면서








물건리





10월 19일
06시 기상. 밖에 나오니 스산한 바람이 불었어요. 몽돌이 덮인 해변에서 여명과 일출을 촬영했어요. 마을 이장댁의 스피커인지 아침 뉴스 소리가 왕왕거렸어요. 강정구 교수, 천정배 법무장관, 김종빈 검찰총장... 정말 지겹고 지겨운 뉴스였어요. 차라리 옛날처럼 새마을 노래나 들려줬으면 좋겠어요. 라면을 끓여먹으려 했으나 바람이 불어 포기하고 07:40분에 출발했어요. 남해대교를 건너기 전의 기사식당에서 재첩국으로 식사를 했어요.

식사를 마치고 남해대교를 건넜어요. 09:00에 남해 나들목을 통해 고속도로에 올랐어요. 이젠 울산까지 달릴 거지요. 제한속도 100Km의 도로를 마음껏 달렸어요. 내 차가 출고된 후 이렇게 달려보는 게 처음이지요.

10:45 동부산 나들목을 통과하고 한 시간 더 지나 12시에 울산에 도착했어요. 참 오랜만인 울산이에요. 1981년부터 만 5년인 1986년 3월까지 살았던 곳, 그리고 1994년 7월부터 몇 년동안 수 차례 방문했던 곳이지요.
시청앞에서 동기인 광조를 만나 함께 그의 아파트에 갔어요. 인터넷은커녕 컴퓨터조차 없어 내가 살기엔 부적당하지만 54평이나 되는 그의 집은 대궐 같았고 분명 그의 부인의 솜씨겠지만 집안을 아기자기하고 또 편안하게 꾸며 놓았어요. 좋은 차와 점심까지 얻어먹고 14:00 두 대의 차에 나눠 타고는 30분 후 주전리 해변에 도착했어요. 그냥 나 혼자 가겠다는데도 가까운 데를 간다는데 나 혼자만 보내기가 영 좀 거시기 한 모양이에요.
흐리고 빗방울이 떨어지던 날씨가 개어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둥실 거리는 하늘, 그리고 몽돌이 덮인 해변엔 보기 좋은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어요. 우선 친구 부부의 기념사진 몇 컷을 찍고 몽돌 사진도 찍었어요.

16:00 대왕암 앞에 도착해서는 오대양횟집에 들어가서 생선회와 저녁식사를 했어요. 그냥 헤어지려 했으나 친구 부인은 라면 끓여 저녁 먹겠다는 내 말이 영 마음에 걸리나봐요. 회 한 접시 먹자고 자꾸 그래서 그렇게 된 거예요. 헤어지면서 까지도 제발 차에서 자지 말고 횟집 옆에 있는 민박집에서 자라고 해요. 알겠어요, 알겠으니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가세요. 친구도 내 하는 꼴이 안쓰러운지 영 떨떠름한 표정이에요. 내 걱정하지 말라니까, 내참. 고맙구나 친구야.

친구 부부를 보내고 차안에 있는데 인천복합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곳 복합설비 시운전일을 해보지 않겠느냐면서요. 한림에서 시운전과 운전을 10여 년 했으니 일이 힘들 건 없겠지만 직장 일에서 마음이 완전히 떠난 지금 다시 시스템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런 업무중엔 완전히 사진작업을 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해서 정중히 사양했어요. 직장에서 퇴임한 백수 신세로는 그런 제의가 감지덕지할 일이지만 이젠 내 시간을 갖고 내 삶을 살고 싶어요.

연님이 전화를 하셨어요. 대왕 앞 해변에 차를 세우고 어제에 이어 오늘도 차안에서 자려고 한다니까 도대체 무슨 청승이냐고 하세요. 맞아요, 연님. 저는 청승을 떨어보려고 가출을 한 거예요.

해가 진 해변은 참 쓸쓸했어요. 여름 해수욕철이면 사람들이 북적거리겠지만 겨울을 눈앞에 둔 지금은 스산한 바람이 불고 하얀 파도만 밀려들고 있었어요.
시트를 뒤로 눕히고 모포를 가슴까지 덮었어요. 차창으로 보는 검은 바다 수평선 너머론 고기잡이 배들의 불빛들이 하늘을 비치고 있었어요. 직접 불빛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배들이 바다 멀리 나간 거예요. 먼 바다로 나가 파도와 바람과 싸우며 밤새 고기를 잡는 분들은 얼마나 피로할까.
내가 차안에서 자는 건 호강이라 할 수 있어요. 더구나 오랜 시간 교대근무를 하며 야근을 할 때는 의자에 앉은 채 밤을 새우는데 편안하게 누워 음악까지 들을 수 있으니 호강이 틀림없어요. 더구나 퇴임하기 전 마지막근무까지도 야근을 한 나로서는 승용차의 시트는 너무나 편안한 잠자리예요. 음악과 룸라이트까지 끄고 나니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려왔어요.

잠들다 깨다 하다가 추위가 심해서 01시에 차 시동을 걸고 히터를 가동했어요. 파도가 더 심해졌는지 파도소리가 으르렁거렸어요.
으르렁거리는 파도소리, 검은 밤바다 위의 하얀 물결, 차를 흔드는 강한 바람, 가끔 차창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 어느 날의 함덕이 생각났어요. 잠을 이루지 못해 노트북을 꺼내 지난 2003년 7월에 만들어진 영화를 봤어요.




물건리의 아침
















남해대교




울산 주전리에서 친구 광조와




주전리 몽돌 해변










10월 20일
06시에 대왕암을 마주보는 해변에 삼각대를 세우고 여명부터 촬영했어요. 수평선에 검은 구름이 덮여 깨끗한 일출을 볼 수는 없었지만 이번 여행길에 사진엔 큰 욕심 부리지 않기로 했어요.

7시, 구룡포를 향해 출발 전에 운행적산계를 보니 38414Km, 어젠 280Km를 달렸네요. 도중에 기사식당에 들러 아침을 먹었어요. 고향이 통영이라는 인자하신 할머니가 새우 조개 두부 등을 넣어 끓여주신 된장국이 아주 맛있었어요. 미인 김영애 님의 메시지가 왔어요. 밥 굶고 다니지 말고 건강하게 여행 잘하라고요. 에구, 고마워요, 친구님들이 흰 봉투에 돈 넣는 일 없도록 잘 할게요. ^^*

차를 계속 달려 구룡포를 지났어요. 나의 옛 여자친구의 백부가 설립했다는 구룡포수산고등학교는 종합고등학교로 이름이 바뀌었어요. 해돋이 광장에서 조형물을 몇 컷 촬영하고는 계속해서 토끼꼬리를 돌아 포항으로 향했어요. 토끼꼬리의 꼭대기에서 바라보는 영일만 그리고 그 건너편의 포항종합제철의 굴뚝들을 보니 박정희 대통령과 박태준 씨의 생각이 나며 만감이 교차했어요. 그분들의 나라를 위하는 마음을 지금의 위정자들이 흉내라도 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신들은 아무 능력도 없으면서 지난 날의 남의 흠집만 찾아내고 그것이 할 일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은 위정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을 선거로 뽑은 우리 국민의 수준을 한탄했어요.

11:00 포항시내를 벗어나 다음 쉴 장소인 울진을 향해 북쪽으로 달렸어요. 벼가 누렇게 익은 들판, 드문드문 피어있는 코스모스, 햇빛에 은빛으로 빛나는 억새꽃, 차창으로 흘러드는 달콤한 바람, 파란 하늘의 옅은 흰 구름 등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고 날씨예요. 12시 25분 후포에 도착해서 점심으로 짜장면을 먹었어요.

막내 우식이한테서 메시지가 왔어요. 멋진 사람은 가을 바다를 찾는다면서요. 그렇고 말고요. 오늘 울진에서 1박하려다가 삼척까지 가기로 했어요. 울진에서 삼척까지는 70Km, 불과 한 시간 거리에 어머니가 계신데 어머니를 빨리 뵙고 싶었어요.
울진원자력에 있는 처제에게 전화를 했어요. 여행 중인데 울진은 그냥 통과한다고 했더니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안 되면 발전소 앞에서 얼굴이라도 좀 보여주라고 해요.
"형부, 언니 좀 바꿔줘요."
"언니는 집에 있어. 나 혼자 여행중이거든."
"아니, 왜 언니와 같이 안 왔어요."
"육지에도 이쁜 여자는 많다고 하던데 왜 언니하고 같이 와"

임원 장호 용화 초곡 근덕 맹방 등 낮 익은 바닷가가 이어졌어요. 내가 독점적으로 아껴오던 낚싯터도 눈에 들어왔어요. 해변으로 차를 몰아 촬영하고 싶었으나 신열로 몸이 다 젖을 정도여서 할 수 없이 삼척으로 계속 달렸어요.

15:00 정각에 삼척에 도착했어요. 적산계는 38679Km, 완도에서부터 800여 Km를 달려온 거예요. 혼자 집에 계시던 어머니는 저를 보자 깜짝 놀랐어요. 미리 전화를 하지 않았거든요. 어머니께 절을 드리는데 목이 메었어요. 3.1 독립만세 때 다섯 살로 거의 한 세기를 살아오신 어머니, 이제 내일을 알 수 없는 연세여서 언제 다시 뵈올 수 있을까 했어요.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고 어머니 쓰시는 돌침대에 누워 쉬고 있는데 내가 벗어놓은 옷가지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시던 어머니, 왠지 돌아가던 세탁기가 서니 어디선가 세탁기 사용설명서를 찾아 잠시 읽어보시더니 다시 정상 가동을 하셨어요. 정말 대단하신 나의 어머니시지요.

저녁은 봉식 형님 댁에서 했는데 몇 십 년 전부터 형님과 형제처럼 지내시던 박태훈 사장이 낚아 온 학꽁치 회로 정말 잔치를 했어요. 횟집에 가서도 회를 잘못 뜨면 아예 먹지를 않는다는 박 사장이 직접 뜬 회를 각종 양념과 야채를 넣어 비빔국수처럼 해서 먹었는데 나는 그런 회를 처음 먹어봤어요. 음식이 아니라 예술품이었어요.
박태훈 사장은 참 고마운 분이세요. IMF로 형님이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문을 닫은 후에도 조금도 변함 없이 형님을 가까이 하는 분이지요. 심지어 고기 한 마리 낚아도 형님 댁에 먼저 들른다는, 막내의 말마따나 우리 동생들이 미처 챙기지 못하거나 부족한 부분을 바로 그 분이 채워드려 형님을 외롭지 않게 하는 분이지요. 저 역시 그 분을 뵐 때마다 참 고맙다는 생각을 먼저 해요. 우리에겐 친척보다 더 가까운 분이라 할 수 있어요.

조카의 컴퓨터로 연님의 사랑방에 삼척 도착 소식을 알렸어요.
내일은 무조건 쉬기로 했어요. 출발 전의 몸살을 이틀간 추운 해변에서 악화시켰나 봐요.




대왕암 여명과 일출








이름 모를 해변에서














호미곳에서




영일만




후포를 지나서




삼척 한치재 위에서





10월 21일
비바람이 불며 기온이 급강하했어요. 오늘 밤 설악산과 대관령엔 첫눈이 내린다고 해요. 맞아요. 이럴 때 산에 가야해요. 그래서 산에서 하룻밤을 잔 후 단풍과 첫눈을 한 화면에 담아야 해요. 비가 오면서 바람까지 강하게 부니 한 마디로 으스스해요. 한기와 식은땀이 여전해서 큰 형님과 삼척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별 이상은 없고 몸을 무리해서 그러니 무조건 쉬라고 하면서 약을 처방해줬어요.

점심 때 어머니가 팥죽을 쑤어주셨는데 정말 일품이었어요. 이군이 어머니한테 아직도 배우지 못한 게 바로 이 팥죽 쑤는 법이에요. 이렇게 신열이 심한 건 내일을 알 수 없는 어머니의 사랑을 좀 더 받으라는 신령님의 뜻인지도 몰라요. 당신이 쓰시던 돌침대에 나를 눕게 하고는 수시로 손을 넣어보며 온도를 조절해 주셨어요. 내 나이에 아직 이런 사랑을 주시는 어머니가 계시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일까 싶어요.
하루 종일 꼼짝없이 방콕 신세가 되었어요.





이게 뭔가하면 악보예요. 지금부터 45년 전 우리가 대구 살 때 큰 형님이 오선지에 직접 철필로 적은 악보예요. 그때만 해도 악보가 아주 귀할 때인데 기타 연주를 위한 코드명까지 있는 악보는 더욱 귀했어요. 형님은 악보를 적기 위해 철필을 콘크리트 바닥에 갈아서 끝은 두툼하게 만들어 '콩나물 대가리'를 점 하나로 표시했어요. 이런 식으로 200곡도 넘는 악보를 적어 만들었으니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하겠지요.
그런데 형님의 이 악보를 친구분이 빌려갔는데 친구분은 이 악보를 가지고 일본까지 다니며 사용하다가 45년이 지난 얼마 전에 돌려 주면서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건 남도 주고 버리기도 했지만 이 악보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더라는 말을 하더래요. 이번에 삼척에 갔더니 형님이 이 악보를 보여주면서 그런 이야길 하시길래 여기에 올려봤어요.
책갈피에 '대구시 고향악기사'(大邱市 故鄕樂器社)라는 글이 보이지요. 그때만 해도 대구에서 오선지를 파는 데가 여기 밖에 없었어요.










10월 22일
비가 그치고 날이 좀 들어 맹방에라도 가려다가 그만 두었어요. 바람이 얼마나 싸늘한지 밖에 나가 다니질 못할 정도였어요. 차를 봉식형님의 공장에 갖다 넣고 여전히 방안에서 뒹굴었어요. 이젠 오한과 식은땀이 흐르는 증세는 사라졌지만 몹시 추위를 탔어요. 따뜻한 제주에서 살다와서 그렇겠지요 뭐.
어머니한테 누구 노래를 좋아하시냐니까 이미자 노래를 좋아하신다길래 노트북에 저장된 이미자 노래를 들려드렸더니 컴퓨터에서 노래도 나온다시며 무척 신기해 하셨어요.



10월 23일
짐을 차에 싣고 9시 20분 어머니와 형님들과 이별을 하고는 후진 해변으로 갔어요.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고 바람조차 없는데도 너울과 해변의 파도가 심했어요. 참 이상한 바다날씨예요. 저도 이런 바다는 처음이에요. 후진에서 파도를 찍고 추암에서는 바위와 파도와 또 갈매기를 촬영했어요. 파도가 너무 심해 바다가 하얗게 되는 게 좀 유감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에 드는 촬영을 했어요.
정동진에도 들어갔다가 강릉으로 가서 막내 동생을 만났어요. 그리고 동생 내외와 함께 한식집에서 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는 경포해변을 다녀왔어요. 파도는 하루 종일 계속 강하게 쳤어요.
저녁 뉴스를 보니 오늘 너울로 7미터나 되는 파도가 해변을 덮쳐 몇 사람이 죽기도 했다고 해요. 오늘 파도를 생각하니 그럴만도 했어요. 사진 두어 점을 연님의 사랑방과 내 홈에 올렸어요.




후진에서-뭍의 날씨는 쾌청하고 바람 한 점 없이 온화한데도 바다는 미친듯 울부짖고 있었어요.
















추암에서






















너울은 바다를 하얗게 뒤집어 놓았어요.












정동리 역에서




모래시계 소나무




정동진 바다도 미쳐 있었어요.





10월 24일
새벽 5시 25분에 막내의 아파트를 나서 추암으로 달렸어요. 도중에 길을 잘못 들어 몇 번 되돌아 나오기도 했지만 늦지 않게 여명부터 촬영할 수가 있었어요. 어제보다 파도는 많이 잦아들었어요. 일출촬영 후 가게에서 김치찌개로 아침을 먹고 북쪽으로 달렸어요. 바람이 불고 연무까지 있어 풍경사진 촬영하기엔 좋지 않은 날씨예요.
속초의 한전생활연수원 앞을 통과하고 미시령을 넘어 다시 진부령을 넘었어요.

12시 20분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꽃나루 화진포에 도착했어요.
완도를 출발한 후 1,105Km를 달렸어요.
사람 하나 없는 해변에 모래바람이 불었어요. 해변에 엎드려 조개껍질을 촬영하는데 입에 귀에 코에 모래가 마구 들어갔어요.
해변 촬영을 하고는 차안에서 라면을 끓여 먹었어요. 기가 막힌 맛이에요. 몇 년 전 왔을 때 봤던 엿장수 할아버지가 박물관 앞 마당에서 졸고 있었어요. 엿을 사며 물어보니 34년 동안 화진포에서만 엿을 팔아왔대요. 이군에게 줄 엿을 조금 사고는 다시 강릉 막내 집으로 돌아왔어요. 막내 제수 씨가 만든 음식이 입에 맞아 저녁식사를 많이 했어요.




추암 일출










화진포
















10월 25일
이제 돌아가는 길만 남았어요.
가다가 도중에 얼마든지 묵어갈 수도 있지만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요. 집 나온 지 8일째 좀 지치기도 했거든요. 집 나오면 고생이란 말이 달래 나왔겠어요.
07:50 출근하는 막내와 함께 아파트를 나와서는 남쪽으로 달렸어요. 컨디션이 좋아서인지 운전하기가 아주 편했어요.
영동화력발전소 곁을 지날 때 감회가 깊었어요. 내 총각시절 발전소 건설에 밤낮이 없던 그 힘들던 때 그래도 이런 저런 로맨스가 있었어요. 내가 사고로 입원할 때 가까워진 양호실 간호사 신 모양과는 거의 결혼 직전까지 갔었고요. 또 교환원인 김 모양, 타자원인 원 모양 그리고 자재원 박 모양 등도 '임자 없는' 내게 늘 호의적이었지요. 건설사무소 소장이던 분이 여직원들 모임에서 했다는 '건설 끝나기 전에 총각 한 놈씩 꼭 물어야해. 건설 끝나고 헤어지면 그걸로 끝이야!' 라는 말도 한 동안 이야깃거리였지요. 그때 건설한 발전소에 내 두 동생이 근무했고 지금도 막내가 근무하고 있어요.

고속도로를 타지 않고 일반국도를 달려 09:10분에 삼척을 통과하고 2시간 20분만인 11:30분에 포항-경주 분기점에서 경주 방향으로 갔어요. 고속도로를 타려고요. 도중에 휴게소에서 점심을 먹고 계속 남으로 달려 13:35분에 부산에 도착했어요. 강릉을 출발한 지 5시간 45분만이에요.

부산 연안여객터미널에서 간단한 식사를 하고 18:30분 코지 아일랜드호에 승선했어요. 차 운반비는 124,700원, 사람은 1인당 29,000원이에요. 3등실 B. 카펫이 깔린 운동장만한 방인데 한 켠엔 세면대가 일곱 개 있고 벽엔 TV가 두 대 있어요. 저도 다른 사람처럼 창이 있는 벽 쪽에 자리를 잡았어요. 제주 도착까지 열두 시간이나 걸리니 어떤 여자들은 자리를 잡자마자 고스톱 판을 벌리고 어느 분들은 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고 젊은 사람들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기도 했어요.

19:00, 출항하자마자 부산항의 야경을 몇 컷 촬영하고 캔맥주 세 개를 사서 자리에 오니 옆자리 할머니는 화투를 꺼내 재수를 보고 계셨어요. 재수가 어떠냐고 여쭤보니 아주 잘 떨어진대요. 제주 사는 딸내 집에 간다는 84세의 할머니는 나이는 들었어도 아주 고운 분이셨어요. TV에서 내일의 국회위원 보선이야기가 나오니 나보고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해요. 내가 사는 데서는 보선이 없지만 무조건 야당을 지지한다고 하고 또 대통령 이야기가 나오자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한다고 하니까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해요. 하하하... 이러니까 노인들은 선거 때 투표 안 하는 게 좋다고 하는 거지요. 하하하하.... 그러나 힘없는 노인들이라고 해서 생각조차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위정자들이 좀 알았으면 해요. 그리고 국가의 앞날에 대해 진정으로 고심하는 모습을 우리 국민들에게 보여줬으면 해요. 툭하면 홍두깨 같은 말이나 내밀고 국가경영을 장난감처럼 다루며 통빡이나 때리고 편가르는 잔머리나 굴리는 모습으로는 결코 지지를 받을 수 없는 거지요.

배가 부산 외항으로 나오는 데만 30분이나 걸렸어요. 배에 인터넷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맥주를 마시며 할머니께는 감자칩을 권했어요. 술은 못 마신대요.
앞자리에 누워 잠을 청하는 분이 천장의 전등불빛을 가리느라고 읽던 책을 얼굴에 올려놓았는데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책이 떨어지고 떨어지면 다시 올려놓기를 반복하고 있어 제가 갖고 있던 신문을 펼쳐서 얼굴을 덮어줬어요. 편하게 자라고요. 그런데 좀 있더니 그 분이 부스스 일어나서는 제가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걸 보더니 매점에 가서 맥주와 안주를 사왔어요. 같이 마시자면서요. 그리고 신문지로 얼굴을 덮어줘서 고마웠다고 새삼 인사를 해요.
이런 경험들이 있는지요. 누어서 잠을 자려는데 약간 서늘해서 얇은 이불이라도 하나 덮었으면 좋겠는데 도무지 일어나고 싶지 않아 꼼지락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이불을 덮어주면 참 고맙던 경험요. 아마 그 분은 아까 그랬었나 봐요. 그래서 신문지 한 장 얼굴에 덮어준 제게 맥주를 사 와서는 새삼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건가 봐요. 거참, 신문지 한 장이라도 이젠 소중하게 생각해야겠어요. 결국 저는 그 분의 잠을 깨워버린 거예요. 그 분이라는 분이 남자냐고요? 아뇨.




코지 아일랜드호-부산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부산항 야경




출항하는 배 위에서




시간 죽이는 데는 역시 고스톱이....








10월 26일
자정이 지나 누어서 잠을 청했는데 뒤척이다보니 05시 30분, 제주의 불빛이 선명하게 보였어요. 하늘엔 반달이 떠 있고 차지 않은 미풍이 불었어요. 배가 예상보다 일찍 도착해서 선상에서 일출을 촬영하진 못했지만 빨리 오면 좋은 거지요. 6시 15분에 부두에 접안을 하고 15분 뒤에 하선했어요.
집에 오니 마포로 복도를 닦고 있던 이군이 깜짝 놀라요. 8시쯤 올 줄 알았대요.


이제 여행을 마치고 무사히 집에 돌아왔어요.
여행 중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이틀 간 추운 해변의 차안에서 잠을 잔 건 잘못이지만 나름대로 얻은 것도 있어요. 즉 차안에서도 충분히 잘 수 있다는 거지요. 앞으로 일출봉 앞에서 송악산에서 또 사계해변이나 영실에서도 그럴 거예요.
여행 중 수시로 전화나 메시지로 내 건강을 걱정하고 격려해 준 친구님이 고맙고 아무 탈 없이 1,600Km를 달려 준 나의 애마 '제주27 더4071'도 고마웠어요.




제주항에 도착한 코지 아일랜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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