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에서 백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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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 정상에서 만난 천지/2009년 7월 9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출발을 기다리며



"저도 델꼬 가 주세요~!"
지난 해 인디카 백두산 야생화탐사를 신청했다가 사정이 있어 취소했었는데, 그리고 그때 가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는데, 금년도 탐사신청 공지가 이미 지난 5월 6일에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뭘 하고 있다가 마감날짜를 불과 이틀 앞둔 오늘에야 다시 신청을 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들이 늘 이런 식이다.
그러니 동네 비디오방에서 일당 1,500원 받는 알바비 저축해서 300억원 짜리 자가용 비행기 사겠다는 말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신청을 하자마자 준비물을 메모하기 시작했다. 아니, 출발하려면 아직 40일이나 남았는데 뭘 벌써 그러느냐고? 나보다 20일이나 먼저 신청하신 분들은 이미 출발준비가 완료되었을텐데 지금에야 이러는 게 늦으면 늦지 이르다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무렴 그렇고 말고~!!


1-1. 연장 챙기기
필름카메라-PENTAX67과 45미리, 75미리, 105미리, 165미리, 200미리 렌즈,
612파노라마인 K612와 65미리, 90미리, 150미리 렌즈
617파노라마인 Fuji G617
디지털 카메라-1Ds Mark lll와 15미리, 16-35미리. 50미리, 85미리, 100미리 마크로, 200미리 ... 하다보니까 문득 참, 내가 백두산 가서 무슨 사진을 찍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 무슨 사진은.... 백두산사진이지... 인디카 회원님들이 야생화 사진 찍을 때 난 평생 찍어온 풍경사진을 찍어야지.... 그 사진 뭐하려고...? 엥...? 백두산 사진만 찍는 사진작가들이 수두룩하고 거길 열 번 스무 번 가서 찍은 사진들이 수두룩한데 기껏 5박 6일 한 번 가서 찍은 꼴란 사진 몇 점 가지고 뭘하려고...? ......

어, 참 그렇구나... 그래,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기로 하자. 그저 여행을 즐기고 백두산 풍경을 가슴에 담아오는 것으로 만족하자. 혼자 가는 것도 아닌데 다른 분들과 보조를 맞추려면 몸이 가벼워야 한다, 육중한 장비 짊어지고 무리하다가 탈진하면 객지에서 그야말로 '공공의 적'이 된다, 그러니 다 그만 두고 디지털 카메라와 렌즈 몇 개만 가지고 가자, 삼각대도 작은 거 하나만 가지고 가자, 지금까지 사용해온 자체 무게가 5Kg이나 되는 배낭은 두고 좀 더 작고 가벼운 것으로 하나 구해보자...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면 난 정말 디기 똑똑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40일간 할 일들을 꼽아보자. 지금 하고 있던 사진편집작업은 계속하자, 때가 되면 선작지왓에 철쭉꽃도 찍으러 가자, 술 마실 일 있으면 떨지 말고 마시자, 그리고 백두산 여행의 첫날 도착지인 장춘부터 시작해서 우리가 다닐 곳의 자료를 수집하자. 끝.


1-2. "민족의 영산 백두산"
이번에 움직일 곳을 구글어스를 열어 직선거리로 재 본 결과 다음과 같다.(단위 : km)
제주-인천 450
인천-장춘 760
장춘-송강하 260
송강하-백두산 50
송강하-연길 185
연길-장춘 360
장춘-인천 760
인천-제주 450

백두산에서 촬영할 때의 이동거리를 제외한 큼직한 총 이동거리가 무려 3275km다. 더구나 이 거리는 직선으로만 잰 거리여서 어쩌면 별 의미가 없는 수치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제주에서 백두산까지의 직선거리 그대로를 날아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과' 950km인데...
백두산은 북한의 양강도 삼지연군, 중국 지린성의 경계에 있고 가장 높은 곳은 해발 2744미터(북한에서는 2749.2미터로 표기)인 장군봉이며 모두 16개의 봉우리가 천지를 둘러싸고 있다까지만 하자. 원고지 아껴야 하니까.


1-3. 송금
금년도 돌매화 촬영을 6월 6일로 잡았다가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아 취소했었는데 취소하고 나니 이번엔 돌매화에 대한 상사병으로 살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이틀 후인 6월 8일 좀 무리하지만 산행을 했다. 한 번 걸리면 약도 없다는 상사병으로 죽는 거 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더위에 물 네 통을 마시며 왕복 19.2Km 그리고 거기에 2Km를 더하여 21.2Km를 좋지 않은 몸으로 걸은 게 크게 잘못이었는지 두통이 심해지고 식욕은 사라졌다.
밤이고 낮이고 잠이 쏟아지고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며칠 전 백산기획에서 이메일이 왔다. 자세한 여행일정이 있고 여행경비도 언제까지 입금시켜 달라는 내용이었다.
오늘 아침(6월 15일) 여행비 138만원을 입금시켰는데 몸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 걱정이다.


1-4. 이상(6월 17일)
두통이 너무 심하고 밤엔 잠을 잘 자지 못했다. 참을 수가 없어 6시경 00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문진이 시작되었다.
"어디가 아픕니까, 참 머리가 아프다고 했지요...?"
"예."
"머리가 어떻게 아픕니까, 쇠망치로 얻어맞는 그런 아픔인가요?"
"모르겠는데요."
"....예...?"
"...아직 머리를 쇠망치로 맞아본 적이 없어서요...."
"아 그렇겠군요. 그럼 머리를 기계에 물려놓고 조이는 그런 아픔인가요?"
"선생님, 사람 머리를 쇠망치로 때리고 기계에 물려놓고 조이고 하는 거 유관순 누나 때나 있던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선생님께서는 그런 체험을 해보신 적이 있는지요...?"
"아직... 없습니다만..."
"제 생각엔 문진항목 내용을 좀 바꾸는 게 환자진단에 좋을 듯 합니다. 도대체 요즘 그런 체험을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선생님께서 원하신다면 제가 TV '삶의 체험'에 신청을 해 보겠습니다만.... 거기에서 머리를 쇠망치로 때리고 조여서 고통강도가 얼마나 되는지 의사 선생님들이 우선적으로 체험하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
"......"

환자가 매사 이러니 뭐 물어볼 게 있을까.
히히히....

(후에, 위의 이야길 친구녀석에게 했더니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다.)

제 목 까칠한 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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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환자를 의사들은 까칠한 환자라고 해요.
쇠망치로 맞아본 적은 없지만 뭐에 맞아 본 적은 있잖아요.
또 조이 듯이 아픈 것도 짐작이 되고요.
의사는 그렇게 물어도 되지만 환자가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 듣게 하기 위해 그런 건데.....
의사가 속으로 그랬겠어요.

아직 덜 아프신 거구나.^^

혈액검사, 흉부 엑스레이, 머리 CT촬영을 했으나 별 이상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왜 그럴까.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두통으로 병원에 가긴 처음인 것 같다.
오후엔 동네 한방병원에 가서 침도 맞고 전기치료도 했다.
그러나 도무지 별로 나아지지질 않는다.

앉았다 일어서기만 해도 두통과 현기증으로 쓰러질 것만 같다.
이래가지고는 백두산 산행을 할 수가 없다.
주관사인 백산기획과 인디카의 물푸레님과 보라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고 참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연락을 했다.

웬일일까.
내 몸에 무슨 일이 생겼고 또 생기고 있는 것일까.
별 거 아닌 일일까.
치명적으로 안 좋은 일일까.

김치 한 가지만으로도 늘 꿀맛 같이 밥을 먹었는데 이렇게 식욕이 없다니 알 수가 없다.
저녁식사를 하고 나서 두 시간 가량 산책을 했다.


1-5.입원-6월 19일
새벽 산책을 하는데 심한 현기증이 일어난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자마자 다시 00대학병원 응급실로 갔다.
소변검사, 혈액검사를 한 후 조영제를 투입하고 다시 CT촬영을 해서 검사했으나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뇌혈관도 아무 이상 없이 깨끗하다고 한다.
아니, 아무 이상이 없는데 그럼 왜 아프다는 거야~!!! 그걸 알아내서 나 좀 안 아프게 하고 백두산에 보내줘야 할 거 아니냐 말이야~~!!
이번엔 척추의 디스크 사이에 긴 주사바늘을 꼽아넣어 척수액을 추출한 후 검사하니 바이러스가 검출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병명은 '바이러스성 뇌수막염'-
생명에 치명적으로 위험한 세균이 검출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하면서 나머지 몇 가지 사항은 검출하는데 약 일주일 정도의
시간이 더 걸린다고 한다.

501호실에 입원을 했다.
난감한 일이다.
백두산 갈 날짜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출발 한 달도 안 남은 시기에 이럴 일이 생기다니.
지난 해에도 참가신청을 했다가 취소했었는데...

501호실엔 나 외에 네 사람이 더 있다.
음식을 전혀 먹을 수 없는 분, 당뇨와 폐렴이 심한 분, 내 곁의 어르신은 무슨 병인지 간호사를 볼 때마다 진통제를 놔 달라고 하고 간호사는 그렇게는 안 된다며 옥신각신이다.

커다란 유리창을 통해 한라산이 보였으나 낮은 구름으로 윗부분은 보이지도 않는다.
암담한 분위기다.
이군은 얇은 모포 하나 가지고 곁에서 쪼그리고 잠을 잔다.
그런 이군이 애처롭다.


1-6. 둘쨋날-6월 20일
아침 일찍 한라산이 웅장한 모습을 나타냈다.
정상부터 왕관릉과 삼각봉까지 흰 구름에 덮인 정말 멋진 모습이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서서히 움직이는 구름이 정상과 왕관릉과 삼각봉을 가리거나 보이며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카메라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 누군가 병원에 온다면 내 배낭을 가지고 오라고 해야겠다.
"여보, 한라산 좀 봐. 날 오라고 하잖아."
"퇴원하거든 실컷 가세요."
이군은 병원에 있으면서도 산에 갈 생각만 하는 내가 마뜩찮은 모양이다.
남편이 300번이나 올라간 산이라면 좀 느낌이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 도무지 그런 내색을 않는다.
나삔 시키.

아침이 조금 지나서 민기 엄마가 오셨다.
전복죽을 맛있게 쑤고 빵도 사 담아 오셨다.
우리 가족에겐 10년도 넘게 한결같이 고마운 분이다.

점심 때 조금 지나서 L씨가 보냈다면서 과일 바구니가 왔다. 멜론, 바나나, 감귤, 복숭아, 참외, 포도, 한라봉 등등이 하나 같이 맛이 있다. L씨도 고맙고 과일가게 주인도 성의를 다 한 것 같다.
오늘은 산책도 하지 못해 그냥 방안에서 뒹굴고 있다.
두통이 너무 심해서 병원에서 지어주는 약을 먹었는데 내가 너무 벨난 사람이 되어서인지 어째 약도 잘 듣질 않는다.

어제 병원의 쇠망치, 머리 조이는 기계 등의 이야길 했더니 '환자'인 내게 이렇게 빼딱한 메일을 보내오는 녀석이 있다. 그래서 이 친구 녀석에게 감정이 있다는 게 아니라 세상 원래 그러려니 하고 달관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한다. 안 그러면 정말로 쇠망치 효과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제 목 선생님이 다 옳아요!
보낸날짜 2009년 6월 26일 금요일, 오전 09시 20분 34초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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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제발 좀 그만하세요.
인디카 사람들이 웃어요.

그런 걸로 의사에게 시비하는 사람은 글쎄 선생님 밖에 안 계실 거라니까요.
다 그러려니 하지요.

제가 아는 의사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어요.
제가 두통이 너무 심하다고 하니까
"지렁이가 기어가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아픈가요?" 그랬어요.
전 즉시 알아 듣고
"그런 건 아니고 눈도 못 뜰 만큼 조이듯이 아파요. " 그랬더니
긴장성 두통같다고 진단 내려요.
그래도 전 너무 아파서 MRI 한 번 찍어보고 싶다고 했고 그랬더니 의사가 처방을 해 주었어요.
이런 저 같은 환자가 정상이지 쇠망치로 안 맞아 봐서 모르겠다고 하는 환자가 정상이에요?

자꾸 그러면 스트레스 받아서 선생님 두통이 심해질 지도 몰라요.
환자는 늘 긍정적으로 기분 좋게 지내야 병에 대한 저항력도 커지는 법이에요.


참 의사들은 이상하다.
왜 두통의 정도를 표현하는데 쇠망치와 머리 조이는 기계가 필요하고 심지어는 지렁이까지 동원 되어야 할까.
지렁이가 기어다니면 정말 머리가 아픈 걸까....?
의사들은 머리속에 지렁이 한 마리씩 넣어가지고 다니는 걸까...?

저녁 무렵엔 눈부시게 화려한 호접란 화분이 왔다.
이건 Y씨가 보냈다.
병실에 꽃을 들여놓을 수 없으니 나 병원에 있다고 해서 꽃을 보내진 말라는 메시지를 보냈는데도 Y씨에겐 통하지 않는다.
한라산은 아침처럼의 낮은 구름에 가려졌다.


1-7. 셋쨋날-6월 21일-링거호스
지난 밤 잠을 자다가 베개가 축축해서 깜짝 놀라 일어나보니 손등에 연결한 링거호스와 바늘부분이 약간 분리되어 주사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다행히 혈액은 유출되지 않았다.
병원에서 이런 일이 가끔 있는 모양이다. 2년 전 이군이 어깨 수술로 입원했을 땐 야간에 링거호스가 빠져 침대 바닥을 피바다로 만든 아찔한 사고도 있었다. 그때 그런 상황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으면 이미 깊은 잠이 든 이군은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면서 그대로 저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링거호스를 보니 생각나는 게 있다.
군대영창에서 수감자인 군인들이 링거호스로 만든 '공예품'은 말 그대로 '예술품'이다.
링거호스를 어디서 어떻게 구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굵지도 않은 호스를 면도날로 가늘게 쪼개고 쪼개서는 분수를 만들고 꽃을 만들고 화려하게 터지는 불꽃도 만든다. 그렇잖아도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며 군대생활을 지루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영창에까지 갔으니 그 시간이 얼마나 지루할까 생각하며 그들의 '예술품'을 유심히 본 적이 있다.
나도 영창 갔었느냐고요?
원참 별 걸 다 물으시네.

간밤에 요란하게 비가 쏟아졌다.
오랜만의 비에 가뭄이던 제주지방이 촉촉히 젖었다. L씨는 아침 일찍 밭에 나왔다며 메시지를 보내왔다. 부지런한 분이다. 손수 일군 밭에 뭔가를 심어놓고는 혹여 간밤의 많은 비에 휩쓸려 유실된 곳은 없는지, 비 맞은 땅에서 뭔가 싹이 터서 올라오지는 않았는지 살펴보는 마음은 말 그대로 농사를 사랑하는 마음이다.
비는 그쳤지만 안개가 짙어 한라산은 뿌리부터 보이지 않는다.
이제 기침을 해도 큰 두통은 없지만 여전히 깨끗한 느낌은 아니다. 전보다 나아지긴 해도 그렇다.

매 식사 밥 한 그릇으로 이군과 나누어 먹는다.
이군은 원래 식사량이 적고 나는 입맛이 없어 잘 먹지 않으니 한 그릇으로도 충분하다.
오늘 아침엔 더욱 입맛이 없어 밥 몇 숫갈과 자두 하나 복숭아 하나를 먹고는 병원 주위를 산책했다. 비 온 후의 바깥 공기가 신선하다.

여행지와 날짜가 결정되면 그때부터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다. 지도를 찾고 인터넷 들을 통해 여행지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며 여행을 준비하는 그 달콤한 시간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의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산 여행기는 어쩌다 처음부터 이렇게 병상일지가 되어버렸다.
생전 처음 가는 백두산인데...
백두산으로 출발할 날짜가 15일밖에 남지 않았다.
앞으로 5일 내에 두통이 모두 사라지고 남은 10일간만이라도 준비를 하고 '몸 만들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게만 되었으면 정말 더 바랄 게 없겠다.

병실내의 세면대를 사용하다가 누군가 바닥에 물을 많이 쏟았다.
이군이 마포걸래를 찾다가 없으니까 어디선가 휴지를 얻어가지고 와서 깨끗이 닦는다.
"그냥 두지..."
"일요일이라 청소아줌마 안 올지도 몰라요. 잘못하면 넘어지잖아요."
3일 전 새벽 산책을 하는데 5일장 광고신문이 길에 널려 있는 걸 보자 하나하나 모두 주워서는 쓰레기 하치장에 버리고 왔다. 이런 이군의 착한 마음이 아름답고 사랑스럽다.

병실에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없는 게 참 답답하다.
세계 최고의 인터넷 강국이고 제주도 최고의 병원에서 말이다.


1-8. 넷째날-6월 22일-퇴원
어제 저녁엔 입원 후 처음으로 밥 한 공기를 다 먹었다.
그러고도 속이 메스꺼운 느낌이 없다.
이군과 산책하다가 바나나우유 한 통과 슈크림이 든 빵을 하나 사 먹기도 했다.
밤엔 잠이 오지 않아 세 시까지 혼자 휴게실에서 이미 몇 번 본 영화인 '300'을 다시 보기도 했다.

아침에 퇴원신청을 했다.
월요일이어서 퇴원자가 밀리는지 12시가 넘어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나머지 척수검사 결과가 다음 월요일에 나온다니 일주일 후에 다시 병원에 와봐야 한다.


1-9. 6월 27일
좀 나아지던 두통이 다시 심해졌다.
앉고 일어설 때는 물론 누워있다가 돌아눕기만 해도 찌르듯한 통증이 왔다.
통증으로 밤엔 잠을 이루기가 힘들어 아침을 먹고 다시 병원에 갔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진단을 해 보더니 아직은 큰 이상점이 발견되지 않고 이틀 후인 29일날 와서 최종 결과를 보는 게 좋겠다고 한다.
난 정말 까칠하고 귀찮은 환자일까.
종일 피곤하다.


1-10. 항공편 변경-6월 23일
7월 7일날 7시 30분에 서울 가는 비행기표를 벌써 오래 전에 예약했다.
내가 그 시간 항공편을 예약한 건 나름대로 깊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일행이 인천공항에 모이는 시간이 11시,그렇다면 거꾸로 계산해서 인천-서울 리무진버스 40분, 서울-제주 1시간이니 넉넉잡아 두 시간이면 된다.
즉 제주에서 9시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으면 딱 되는 건데 왜 1시간 반이나 이른 비행기편을 예약했을까.
그건 내 살아온 경험상으로 볼 때 공항엔 이쁜 여자가 많더라는 것 때문이다.(이건 진짜다)
어차피 먼 데로 여행을 가는데 설레는 가슴 안고 집에서 시간 죽이며 있을 게 아니라 좀 일찍 공항에 나가서 이쁜 여자를 '구경'하는 즐거운 시간을 갖는 게 뭐가 나쁠까. 아니, 여건이 되면 샤프한 작업을 걸어보는 것 또한 결코 절대 진짜 정말로 인생을 화려하게 사는 방법이 아닐까.
.... 해서 그 시간의 비행기편을 예약한 게....... 아니라 일금 19,900원짜리 표가 하필 그 시간에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

물론 동네 비디오방에서 일당 1,500원 받는 알바비 조금만 더 모아서 300억원 짜리 자가용 비행기 사면 될 일이지만 전에도 말했듯이 아직 비행장이 완공되지 않았으니 어쩔 것인가. ㅠㅠ....
첫 새벽 밥 먹고 공항에 나가 작업도 못 걸면서 쭉쭉빵빵 아가씨 멀거니 바라다 보면서 1시간 반을 기다려야하는 그 비참한 모습을 여기에 공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방금 예약한 항공사에서 전화가 왔다.
'고객님께서 예약하신 7월 7일 07:30분 제주발 서울행 항공편이 결항하게 되어 08:55분으로 변경했으면 하는데 괜찮으시겠는지요?'
뭐라고요...? 08:55분....?
아니 우째 이런 일이~!!! 위에서 말한대로 내가 공항에서 작업 거는 시간을 빼면 09:00시가 딱인데 불과 5분 차이로 시간을 그렇게 맞춰준다는 거다, 거참. 그래도 그냥은 안 된다며 한 마디 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할게요, 그 대신 평생 사용할 수 있는 무료항공권을 하나 주던지 아니면 새 거 아니어도 좋으니 쓸만한 비행기 한 대 주면 그렇게 하지요 뭐. 죽으나 사나 같은 민족이고 우리끼리라는데 그 정도도 못하겠어요.
뭐라고요? 그렇게는 안 된다고요...? 거참 19,900원 짜리 비행기표 하나 팔면서 디기 비싸게 구시네... 알았어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그래서 나는 7월 7일날 아침 느긋하게 숭늉까지 마시고 제주공항을 통해 서울을 거쳐 인천에 도착할 예정이다.
기껏 예약한 항공권이 항공사의 일방적인 파기로 정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하도록 바뀌어 버리고 참내, 내가 하는 일은 뭔가 되는 일이 없다. 으흠~!! ^^*~

29일에 좋은 결과가 나오려는 것일까.
정말 백두산에 가는 거냐고?
그거야 나도 모른다.
그러나 답을 모른다면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도 좋고 몸에도 좋다고 누군가 말했다.
내 생각도 같다.

그런데 지성이면 감천-
자가용 비행기 하나 없어 남의 비행기 타고 서울 가야한다는 나의 '애닲은 소식'이 전해지자 즉각 다음과 같은 소식이 왔다.

제목 : 기다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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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곧 항공사를 하나 만들게요.
아주 럭셔리한 선생님 전용기를 한 대 만들고 시간 구애 받지 않고
마음대로 '자겁' 할 수 있도록 도와 드릴게요.

에효~

유심히 읽어야하는 대목은 내 전용기를 한 대 사 준다는 게 아니라 한 대 만들어 준다는 거다.
그것도 아주 력셔리한 놈으로 말이다.(참내 뭐 그렇게까지나...)
이 분은 집에 비행기도 만들 수 있는 아주 커다란 대장깐이 있는 게 아닐까...?

그러나 이 메일 중 나를 가장 감동시킨 귀절은 '자겁'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는 말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겁'은 극히 개인적인 일인데 이런 일까지 도와주시겠다는 그 숭고한 마음을 난 죽을 때까지 잊지 않을 작정이다.

그런데-
그런데 메일의 맨 끝에 왜 '에효~'하고 깊은 한숨을 쉬셨는지 그 부분이 좀 거시기하다.
설마 '자겁'하는 일까지 도와줘야 하는 나의 '됨됨이'를 생각하니 미리부터 한숨이 나온다는 건 아니시겠지.
이래뵈도 내가 얼마나 똑똑한데...


1-11. 6월 29일
시간 맞춰 병원에 갔더니 6개의 척수 샘플 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한다~!!!
몸이 좀 나아지긴 한 것 같으면서도 새로운 통증, 예를 들면 몸을 눕히거나 돌려 누울 때의 통증이 생겨서 은근히 걱정을 했었는데 문제 없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인디카에 '이상무~!!'라고 보고서를 올렸더니 많은 분들이 축하한다, 다행이다, 백두산 가서 좋은 사진 찍어오라며 축하와 격려를 한다.
인디카에 처음 들어온 사람이 이런 글들을 봤다면 이번에 백두산엔 나 혼자 가는 줄 알겠다.
져녁을 먹은 후 배낭을 지고 산책로를 걸었다.
역시 아직은 좀 무리인지 땀이 비오듯 한다.


1-12. 마지막 준비(7월 5일)
어제부터 GPS용 배터리 충방전을 시키고 있다.
가급적 최대용량의 전기를 가져가기 위해서다.
아직 몸이 완전하지 않은 게 유감이다.
두통은 덜해졌지만 자꾸 속이 메스껍다.
현기증도 여전하고.

그래도 이젠 어쩔 수 없다.
간식거리도 사고 삼다수도 작은 걸 네 병 챙겼다.
그런데 내일부터 전국적으로 장마가 시작된다는 예보다.
남해안부터 큰 비와 강풍이 예상된다고 하니 내일 비행기나 제대로 뜰 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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